“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2019), 97쪽
무한한 수의 육각형 진열실이 빼곡하게 붙어 있는 도서관을 상상하자. 방문자는 육각형 진열실의 통풍구로 위아래 무한한 층을 볼 수 있다. 각 진열실은 모두 똑같은 구조를 가진다. 스무 개의 책장이 각각 네 개의 면을 덮는다. 한 면에 다섯 개씩 비치된 책장에는 똑같은 크기의 32권이 꽂혀 있는데, 이 책들은 모두 410쪽이다. 책의 각 쪽은 마흔 행, 한 줄은 80개 정도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책등에도 글자가 적혀 있으나 책의 내용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나선형의 계단이 “아득히 먼 곳으로 내려가거나 올라가”(98쪽)는 우주이지만 도서관으로 불리는 곳이 바로 〈바벨의 도서관〉이다.
유한한 인간과는 다르게 태곳적부터 존재한 공간이며, “철자 기호의 수는 스물다섯 개다.”(100쪽) 그리고 도서관은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동일한 책이 두 권 존재하지는 않는다.”(102쪽) ‘나’는 이 육각형의 어느 방에서 태어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은 ‘나’를 계단 난간으로 던져 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한한 높이의 육각형 진열실 사이를 낙하하며 바람에 풍화되어 사라질 것이며, 허공이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우주의 이름은 도서관이다. 그러나 도서관은 ‘빵’이나 ‘손’ 또는 그 밖의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신이 만들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바벨의 도서관은 신의 언어로 쓰인 책들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번역 작업이 필수인데, 이 작업은 원문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바벨의 도서관에는 알파벳 M, C, V로만 쓰인 책이 있다. “71페이지 세 번째 줄에 있는 M, C, V의 가치가 다른 페이지의 다른 지점에 있는 동일한 일련의 글자가 지닌 가치와 다르다.”(101쪽) 이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 보르헤스의 다른 단편을 소개한다.
(1)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2)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1)은 1948년에 영국인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의 한 문장이고, (2)는 2023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인 내가 다시 쓴 문장이다. 두 문장은 같은 문장인 듯 보이지만, 보르헤스에 따르면 (1)과 (2)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보르헤스의 다른 단편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소개한다. 20세기의 아르헨티나 작가 메나르는 17세기의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저작 《돈키호테》를 다시 쓴다. 메나르의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글자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기계적으로 베껴 쓰는 일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가 하고자 한 일은 세르반테스가 아닌 20세기 아르헨티나 작가 메나르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돈키호테》를 쓰는 것이다. 세르반테스와 다른 시대에서 메나르로서 겪은 세계와 철학, 새로운 시공간의 독자로서 새로 쓰기, 즉 새로 읽기 하는 것. 이것이 메나르의 작업이다. 보르헤스는 오히려 메나르의 것이 “세르반테스의 작품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교묘하다”(61쪽)고 말했다.
“하나의 철학 이론은 처음에는 세상을 그럴듯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것은 철학사의 한 장 ― 만일 한 단락이나 하나의 고유 명사로 변하지 않는다면 ― 으로 남게 된다.”(64쪽) 이렇게 같은 소설도 시대가 변화하면 그 시대의 독자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읽힌다. 독자의 읽기는 곧 그 소설을 새로 쓰는 것과 같다. 독자는 수동적으로 이미 쓰인 글을 저자의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독자는 능동적으로 텍스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렇게 같은 기표 체계를 사용하는 인간의 언어조차 내용이 제각각인데, 바벨의 도서관 속 신의 언어나 이미 사라진 고대 종족의 언어로 쓰인 책을 완전히 번역하는 일이, 그리고 우리가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가능한가? 게다가 이 단편을 쓴 익명의 저자는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확신하는가?”(108쪽)이라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익명의 저자가 쓰고 보르헤스가 옮기고, 역자가 한국어로 다시 한번 옮긴 《픽션들》의 〈바벨의 도서관〉을 이해할 수 있나?
읽기와 쓰기는 해체되고 보르헤스는 스스로 쓴 소설의 각주를 ‘편집자 주’라고 작성하며 스스로를 작가에서 편집자의 역할로 변환한다. 보르헤스가 작성한 각주는 우리 실제 세계와 일치하는 정보도 있지만, 애초에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 속, 즉 허구 세계에서만 참이 되는 인물에 대한 설명도 존재한다. 서양 문학사를 모두 꿰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보르헤스의 진실과 허구를 모두 판별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에 비해 이루고자 하는 결실이 가지는 의미조차 없다.
보르헤스는 1937년부터 약 9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였고, 1955년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애서가이자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책 읽기와 책 쓰기에 대한 소설들을 독특한 구조로 써내려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평을 열었다. 읽기-쓰기와 독자-저자와의 관계를 해체한 보르헤스에게 ‘도서관’이란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빵’은 확실히 아닌) ‘무한한 우주’였다. 그에게는 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한 권의 변론서(The Vindications)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도서관’은 어떤 우주일까?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좁고 높은 직사각형의 진열실이 서로 헐겁게, 그리고 무한히 연결되어 구성되어 있다.”
폭이 좁고 높이가 긴 직사각형의 각진 진열실들이 헐겁게 연결된 모습의 도서관을 상상하자. 진열실의 세 면에는 총 8단의 책장 세 개가 비치되어 있다. 한 면은 배에 힘을 주고 목을 뒤로 빼고서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로, 다른 진열실들과 이어지는 긴 복도가 있다.
정 가운데에는 등받이가 어깨뼈 밑까지 오는 플라스틱 검은색 의자가 있다. 곡선형의 디자인을 취해 인체공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몸과 굴곡이 전혀 맞지 않고 딱딱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의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잘 앉지 않는다. 의자의 네 다리는 스테인리스로 가끔 맨다리에 닿으면 차가워서 깜짝 놀라곤 한다. 언제나 의자의 등받이는 통로 쪽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보면 진열실의 방문자들은 언제나 통로를 등지고 책을 읽는다. 의자는 가끔 사다리의 역할을 같이 한다. 그러나 맨 윗단의 책을 꺼낼 때는 의자에 올라가서도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이 도서관의 철근은 A나라 사람이, 콘크리트는 B나라 사람이, 도배장판은 C나라 사람이 각각 맡아 지었다. 도서관은 각 국가의 사람들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은 결과물이다. (나의 도서관은 신이 만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느 방문자가 어느 진열실에서 나가는구나 하며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도서관에는 여행자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 좁은 통로로 나가는 일도 상당히 성가시거니와, 이 좁은 진열실만큼이나 좁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같은 풍경의 통로를 얼마나 걸어야 다음 진열실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복도만 떠돌다 말라 죽은 방문자들의 이야기가 이따금 진열실로 흘러온다. 게다가 너무 좁은 통로 탓에 진열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방문자들은 태어나면 사서에게 언제나 복도를 걸을 때에는 양손으로 복도 벽면을 긁듯이 만지면서 걸어가라는 규칙을 전달받는다.(그리고 그것이 사서를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다. 사서는 도서관 맨 위층에 있기 때문에 사서를 만나려면 도서관의 맨 위층까지 가야 한다. 이 도서관이 무한하다는 점을 상상해보자) 이러한 이유에서도 이 도서관의 방문자들은 한 번 점거한 진열실에서 죽을 때까지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사실 진열실을 떠나는 방문자의 발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책장을 두드리는 소리,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발걸음의 박자처럼 들리게끔 방문자가 만들어내는 소리.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방문자들은 서로 마주친 적 없고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 속에서 읽었을 뿐이니, 나는 그 존재를 소음으로 확인한다.
혹은 이 무한한 진열실의 도서관의 방문자가 나뿐일지도 모른다. 다른 방문자를 만나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기도 하다. 나의 좁은 걸음이 만들어 낸 소리가 여러 진열실을 돌고 돌아 나중에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A국가 사람이 엮은 철근을 타고, B국가 사람이 바른 시멘트를 건너, C국가 사람이 바른 벽지를 휘감는, 두 발이 만들어내는 것 같이 들리는 짝수의 쿵-하고 여백이 있고 쿵-하는 소리의 집합.
나는 내가 태어난 진열실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죽는다면 나는 맨 밑의 책장의 한 단을 모두 비우고는 그 단에 내 육체를 끼워 맞춰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이 내게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나의 변론서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의 규칙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찾는 것은 한참 후로 미룰 것이다. 그러면 어느 날 무한의 층에 있는 사서가 빈 진열실에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는 그 사람-책을 도서관 소장 도서 목록에 추가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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