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
사람마다 관심사와 지식이 비례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그 분야가 전문적으로 여겨지면 여겨질수록 더더욱 그 간극은 커진다. 좋아하고 싶은 것인지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니 그저 멋져 보이는 것인지 일단은 뭐든 알아야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예술 도서를 고르는 일은 무척 어렵다. 자칫하면 대학교 전공 수업 교재 같은 빼곡한 자간과 빽빽한 줄 간격의 난해한 한자어 가득한 서적을 집어 들게 되고 아차 싶어 반대로 가면 ‘당신이 바로 정답입니다’라고 박수를 쳐주는 입문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미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한다면 그 전문가들이 서로 공유하며 이 예술을 즐기는 이들이 모두 알 것이라 전제하는 지식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왜 딱 그 정도, 미술관에 가서 작가 이름도 작품 제목도 연도도 정확하지 않아도 보면 ‘아!’ 할 수 있는, 그 ‘아’ 안에 언어로는 정리되지 않았으나 어디선가는 본 적 있어서 알 듯 말 듯 아는 것 같은, 그래서 재미를 붙이는 책이 필요했다. 개인의 감상과 작품이 미술사 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알려주는 책이 필요했다.
취향은 쉽게 생긴다. 평론가나 전공자처럼 ‘무엇’이 ‘어떠하여’서 어떠합니다와 같이 문장의 형식으로 취향은 생기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시관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어느 작품 앞에 멈춰 섰을 때, 이 색이? 이 선이? 이 모양이? 형상인가? 이 구상이? 구성인가? 이 붓질이, 유화인가? 이 네모로 나누어진 배경은? 이 직선 도형에서 나오는 역동감인가? 무엇이 내 눈을 사로잡는지도 모르는 채 일단 사로잡히는 일. 그렇게 세상 속에서 수동적으로 붙잡히는 일. 멈춤 이후에 탐독하게 되는 일, 그것이 지식 없이 선행되는 취향일 것이다.
작년 2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칸딘스키,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혁명의 예술 展〉에서 처음으로 관람한 입체주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를 이끄는 게 뭔지, 무엇이 왜 좋은지 말로 설명은 안 되는데, 좋은 것은 확실했다. 단순한 작품이, 추상화된 작품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이 좋은 작품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설명하고 이러한 작품을 더 보고 싶었다.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의 1장의 넷째 날의 여정을 따라가니, ‘퐁피두 센터’가 등장한다. “1905~1960년대까지의 작품, 즉 야수주의, 입체주의부터 추상주의, 바우하우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전 미술,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같은 현대 미술까지 소개”하는 이 미술관에 다시 그 직선 도형이나 네모로 나누어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장의 제목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각형들”이다. 조르주 브라크의 〈기타를 든 여인〉은 분석적 큐비즘이라는 하나의 입방체를 펼쳐 재구성한 그림으로, 직선으로 나뉜 면을 각각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뇌 속에서 여러 조각을 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대상을 완성하게 한다. 해체되어 평면으로 펼쳐진 작품, 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지점”(174쪽)이 나의 취향이었고, 나의 취향은 입체주의였다. 입체주의 작가와 내가 같은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조형되어 있을까? 당신에게 세상은 이렇게 조각난 각 부분이 이어지지 않게 붙어 있는 것인지, 그 작품 앞에 서서 작가에게 묻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는 것과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는 박송이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가 프랑스의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한 짧은 분량의 설명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꼭지는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박물관 별, 작품 별 독자의 흥미가 드는 부분별로 골라 읽거나 짧은 시간에 한 꼭지씩 읽어 나가기 쉽다. 너무 학술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지 않는다. 작가의 생애,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작품의 사조, 현재 미술사 속에서 가지는 의의까지 균형을 잘 잡힌 도슨트를 듣는 듯한 설명이 있다. 직접 작품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주의 깊게 감상할 지점들을 알려 준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나의 주관적 느낌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먼저 읽고 퐁피두 센터 먼저 읽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칸딘스키의 추상화 입체주의 작품, 그리고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화까지. 언제나 대각선의 사용으로 동료 화가 테오 판 뒤스뷔르흐와 다퉜다는 몬드리안의 일화를 들으면 웃음이 먼저 난다. 몬드리안에게 대각선은 얼마나 강렬한 도전이었을까. 추상화를 그린 작가들에게도 묻고 싶은 것이 많다. 모든 것을 지운 세상에서 당신의 직선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자의 여섯째 날 오후를 따라가면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이 나온다. 로베르 들로네의 〈리듬 1〉은 색채의 선상환 같은 추상화이다. ‘근대 산업과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설명이 없다면 무엇을 표현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색채를 강조한 입체주의를 선보인 작품은 색채에서 나오는 감정과 도형이 모습으로 운율감과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들로네의 작품은 ‘선명한 색채’와 ‘원형’으로 대표되며, 이후 추상 미술의 한 흐름인 옵티컬 아트에 영감을 주게 된다.
시대와 미술관을 뛰어 넘어 좋아하는 사조의 작품을 감상하며 《미드나잇 뮤지엄》을 읽다보면 나의 취항에 대한 얇고 작은 지식들이 오밀조밀 쌓여가는 기분이 든다. 작품의 사조와 표현 방식과 시대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더 좋게, 나의 취향을 더 확고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내게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주는 행위를 돕는다. 작가별로, 시대별로 구성 되어있지 않지만 그렇기에 독자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는 나같이 언제나 미술 입문서를 찾다가 헤매던 이들에게 꽤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세밀한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처럼, 저자가 그린 지도를 참고삼아 훌쩍훌쩍 나만의 새로운 발자국으로 오솔길을 만들어 나만의 미술 취향을 공고히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각 꼭지의 주제가 되는 그림이 꼭지 안의 다른 그림들보다도 이따금 작게 실려 있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지만, 여행지 책을 살피듯 손으로 넘겨 재미있어 보이는 그림에서 손을 멈추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자유 여행의 방식이다.
[원문 링크]
아트인사이트, [Review] 지식은 없는데요, 취향은 있습니다 ─ 도서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