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온기

갑자기 뜨거운 물을 부으면

by Ubermensch







내 손발은 마치 얼음장 같다. 겨울에 남자친구를 괴롭히고 싶으면 등이나 배에 내 손을 쓱 집어넣는다. 그럼 경기를 일으킨다. 너무 차가워서. 고소한 정수리는 내 꽁꽁 언 보랏빛 가냘픈 손과 발을 크고 두툼하고 따뜻한 손으로 폭 감싸 주물러 녹여주곤 했다. 나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차가운 사람인가 싶다. 사람들이 내게 차갑다고 비난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걸까. 부족한 온기를 좀 채우려고.


사실 늘 추운 사람에게 온기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공급될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냥 계속 얼어있는 편이 낫다. 혹한 시기에 따뜻한 곳에 잠깐 들렀다 나오면 추위가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계속 춥게 살다 보면 감각이 무뎌져서 실제만큼 추위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얼어 지내기를 선택한다. 내가 난방을 안 하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내내 따뜻하게 지낼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냥 코끝 시려운 실내 온도에 익숙해지면 겨울 내 그럭저럭 아무렇지 않은데, 애매하게 간헐적으로 난방을 하면 몸이 그새 온기에 적응해 버려서 안 하는 날 더 춥다. 혹한기 훈련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터프한 환경을 견뎌내야 강해진다. 나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약해서 동정받거나 도움을 구걸하는 입장이 되는 건 딱 싫다.


그래서 최대한 단단한 얼음으로 무장한 채 살아가고 있는 나는, 타고나기를 따뜻함이 넘쳐 주변에 사람을 끌어모으는 태양이나 모닥불 같은 사람을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태양은 모든 생명의 근원과 성장의 동력으로서, 그 따사로운 열에너지에 의존하는 존재들이 너무 많으므로, 그 은혜를 입는 무수한 무리 중 하나가 되기엔 왠지 좀 싫다. 그래서 나는 태양이 부재하는 밤의 세계에 살면서 그 밤을 지배하는 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발레 학원에 가려고 운전을 하고 있던 중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발신자는 내 구독자 중 한 분이셨는데, 서로 얼굴도 모르는 관계다. 최근에 내가 로또 글을 썼고, 예전에 가위라는 제목으로 내가 가위를 눌릴 때마다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그분은 본인이 로또에 당첨이 되면 최근 내가 기획 중인 크리스마스악몽 메거진 구독권과, 내가 가위에 눌릴 때마다 꾸는 반복되는 악몽을 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운전 중 그 메일을 읽자마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고 마음이 쿵 하고 너무 놀라서 사고가 날뻔했다.


그분은 모를 거다. 내가 사는 동안 수백 번은 꿨던 그 가위와 악몽이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무서운지. 그분은 정말 겁도 없지. 괜히 말 잘못해서 그 꿈이 혹시라도 진짜 옮아가면 어쩌려고. 보통 사람이 로또를 사면서 기대하는 바는 본인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할 만한 물건, 기회, 투자를 떠올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어떻게 로또에 당첨돼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악몽을 사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단단한 얼음 상태이다가, 느닷없이 끼얹어진 그 말도 안 되게 뜨거운 폭포수에 무방비하게 녹아버리고 말았다.


발레학원에 도착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에 맞춰 긴 연휴 동안 굳어진 몸을 고통스럽게 찢어가며 생각했다. 내가 계속 얼음으로 사는 게 맞는지. 이렇게 허무하게 녹아버릴 거면서. 사실은 그런 타인의 온기를 계속 원하고 간절히 필요로 했음에도, 이런저런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 지레 밤의 어둠 속으로 도망쳐 숨어있던 거였는지.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남을 속이지 않지만 스스로는 잘 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