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18°C to 120°C
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평소 활동 반경인 우리 회사 524호, 발레학원, 우리 집-이 루틴을 벗어나 내가 모처럼 마음을 먹고 어디를 가보기로 나서면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올 봄 부산 여행에서도, 가을 부산 여행에서도 그랬다.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해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우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늘이다.
주말에 영등포에 차를 가지고 온다고? 참 용감하시다. 앞으로 외우세요. 주말 영등포에 차는 안된다고. 등등 부정적 반응은 많았다. 메모하는 척했지만 딱히 개의친 않았다. 내비가 안내하는 공영주차장이 어딘지 몰라 멈칫거리는 사이, 사나운 영등포의 차들이 내게 엄청난 빵빠레를 먹여대기에 다급히 어떤 골목으로 진입했고 번화가 호텔 앞 한가운데 차들이 기이하게 나란히 세워져 있길래 나도 슬그머니 그 옆에 뽀동이를 주차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새벽에 부른 대리기사 아저씨가 앞유리에 붙어 있던 주차위반 딱지를 보여줬다. 이렇게 나라 세수에 한몫을 한 것이다.
영등포 한 대형 카페에 경기북부, 경기남부, 충청도, 경상도 각지에서 작가님들이 모였다. 여자가 하나뿐이라 팬미팅처럼 보이는 것 아니냐, 수지를 닮았다는 게 사실이냐 등등 사전 모임 대화창에서 참여 작가님들은 내가 얼굴을 들고 나오기 불편하게 굉장한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주말에 영등포에 차를 몰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듯 차가 막혀 삼십 분 정도 지각을 하고, 안내를 받고 비밀의 방 같은 예약장소에 들어가니 먼저 도착하신 작가님들께서 웅장한 대형 테이블의 대장 자리를 가리키며 나보고 앉으랬다. 아주 많은 초롱초롱한 시선들이 내 온몸에 와닿는 게 느껴져 쥐구멍에 숨거나 지붕을 뚫고 날아가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기소개와 개회사 등도 강요당했다. 내 주특기 안녕하세요 저입니다.로 대충 때워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당초 목적인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을 쓸 분위기가 아니라는 몇 작가님의 강압으로 어색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후 2차 술자리 3차 술자리 4차 노래방까지 줄줄이 자리가 이어졌다. 기차 예약 시간, 가정과 현실의 독촉 등의 사유로 차수가 거듭될수록 남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고, 남은 사람들의 의식은 흐려졌으며, 서로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120°C 체온을 가진 작가님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오열을 하셨고, 37°C 의 친구와 18°C의 체온을 가진 나는 왜 우시는 거지? 하며 그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한때 삭발로 의식의 재정비를 하신 적 있다는, 손수건 이론이 인상적이던 비흡연자 40°C 작가님의 값나가보이는 코트와 목도리를 빼앗아 입고 연초를 피우며 울어재끼시는 120°C 작가님의 코트를 벗기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42°C 의 볼빨간 치명이도 만났다. 확실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체온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문득 그 자리에 꼭 왔으면 했지만 참석하지 못한 두 사람이 생각났다. 얼핏 누구에게나 따뜻해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냉정한 단단함이 있어서 내가 함부로 그 체온을 짐작할 수 없는, 내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지만 내 팬이 되고 싶다는 어떤 작가님은, 얼마 전 내게 이렇게 차가운 손은 처음 만져본다며 내 필명이 새겨진 예쁜 전기 손난로를 선물해 주셨다. 어제의 작문 주제를 오늘의 온도로 하자고 누군가 제안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그 전기 손난로의 발열 온도를 떠올렸다. 내 언 손을 따뜻하게 녹여준. 비록 자리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차가운 손을 녹일 온기를 주셨던 작가님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임상적 온도가 꼭 맞는 작가님도 생각했다. 애초에 그가 만들어 달라고 한 자리였고 저 먼 지방 사람들이 차편까지 다 예약을 해 둔 상태에서 공교롭게도 직전에 불참 통보를 해왔던. 몹시 괘씸해 뒤통수를 그랑바뜨망(Grand Battement)으로 가격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지만 참았다. 어떻게 보면 임상적 온도가 맞는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시공간에 굳이 함께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제안이 나를 움직였고, 나로 인해 귀한 사람들이 먼 걸음을 해서 한데 모일 수 있게 된 그 자체만으로도 역할을 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제 자리에 있던 모든 분들이 마음에 가득 차오르면서도, 한 켠에는 오지 못한 두 분의 공간이 있었다.
작가들은 글로써 표현하기 때문에 보통 부끄러움이 많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고, 일정을 조정하고, 무리를 해서 어제 그 자리에 계셔주신 것이다. 그중 가장 부끄러움이 많은 나를 리더로 인정해 주시고, 한참 어린 나의 독재와 폭정을 자연스럽게 여겨주시며, 긴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함께해 주셔서 기뻤다.
누구는 나를 블랙홀로, 누구는 주황색으로, 누구는 흰색으로, 누구는 빛으로 표현해 주셨다. 어제 우리는 각자의 존재로서 하나의 텍스트가 되었고, 그 텍스트를 서로 읽고 해석해 주고 세상에 꺼내보여 의미를 만들어 주었다. 값진 시간이었다. 주차위반 딱지와 대리비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