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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변화가능성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에 대한 내 생각

by Ubermensch





우리 부장님이 얼마 전 우리 방에 배당된 어떤 사건 기록을 보시곤 내 등뒤로 난 문을 박차고 내게 와 말씀하셨다. 이런 지능적인 지적 장애인을 봤나. 이놈이 수사한 경찰보다 더 똑똑해. 지가 장애인인걸 이용해서 범죄를 막 저지르고 있어. 이런 나쁜 놈. 하면서 흥분을 하신다. 나도 그 사람의 전과를 알기 때문에 거든다. 아니 저런 애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얼마나 속이 썩을까요. 그 지능적인 지적 장애인의 수많은 전과 중 존속살해미수도 있었다. 엄마를 칼로 찔렀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놈도 자식이라고 여전히 같이 산다.


부장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나쁜 아이가 나쁜 청소년이 되고 나쁜 어른이 되고 나쁜 할아버지가 된다고. 신체적인 힘만 쇠약해질 뿐이지 악한 본성은 안 변한다고.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교정 기관의 존재 목적 중 교화는 애당초 불가능한 거겠네요. 어차피 처벌받고 나오면 변하지 않고 또 범죄를 저지를 텐데, 그렇다면 범죄의 씨앗을 보인 사람들은 평생 가둬놔야 할까요? 부장님은 최대한 엄하게 처벌해서 무서워서 못 그러게 해야지, 하신다. 나는 아직도 사람의 선량한 가능성을 믿고 싶기 때문에 또 대꾸한다. 나쁜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살다 보면 어떤 일을 계기로 감화되거나 깨달음을 얻어서 이전의 악한 삶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부장님은 그것도 어느 정도 도덕성이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어릴 때부터 악했던 애들은 그대로 나쁜 노인이 돼. 사람은 안 변해. 하신다.


나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믿고 싶지만, 사실 내 경험을 통해서도 그렇지 않다는 걸 대충 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기고 귀엽고 다정하고 헌신적이고 더 바랄 게 없던 전 남자친구가 어떤 잘못을 해서 내가 이별을 통보하자, 울고불고 무릎을 꿇고 노숙을 해가며 잘못을 빌길래 용서해 줬더니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앞선 것과 비슷한 처절한 회개의 과정에 또 마음이 약해져 이번엔 정말 참회했나 보다, 하고 재활용품을 재활용하는 심정으로 다시 거두어 줬더니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더욱 진화하고 심금을 울리는 회개의 모습에 또 마음이 약해져 깔끔한 재활용품이 아니라 동물 사료정도로는 쓸 수 있는 음식물 쓰레기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 다시 거두어줬더니, 동물 사료로 재활용도 어려울 듯한 썩은 쓰레기인걸 마침내 알게 됐다. 그 지난한 쓰레기 재활용 과정을 겪으며 내 두 눈에서는 호수 하나를 채울 정도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범죄자들도, 내 전 남자친구도, 판사와 이별을 통보하는 내 앞에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쉽사리 넘지 않을 선을 그들은 넘었고, 그걸로 그들의 도덕성이 이미 남다르다는 사실은 입증된 것이다. 애초에 본인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허용 기준이 보편과 다르기 때문에 그 선을 넘을 수 있던 것이었고 한번 그어진 선은 쉽게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에 대해 선험적으로 안다면 좋을 텐데, 굳이 경험을 통해 겪고 실망하고 상처받게 된다. 혹시 모를 일말의 예외가능성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피의자의 전과를 보면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 사기꾼은 계속 사기를 치고, 폭력배는 계속 폭력을 쓰고, 변태는 계속 추행과 강간을 하고, 도둑은 계속 남의 것을 훔친다. 시간이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고 나름의 학습 과정을 거쳐 전문적으로 진화한다.


선량한 피해자가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쁜 아이와 나쁜 기질이 있는 사람들을 미리 한 곳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버리는 식의 극단적 방법을 통해 애초에 사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몽키스패너 할아버지도, 길에서 칼 휘두르고 다녔던 아저씨도, 내 전 남자친구도 막상 앞에 두고 눈을 맞춰보면 연민의 구석이 있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듣다 보면 행동이 이해도 간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이 정말 그럴 것처럼 들려서 믿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면, 그들은 다르게 살 이유가 더욱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 눈을 바로 보며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고 더 나은 모습을 약속하는 사람은 믿어주려 한다. 그러면 어쩌면 그 하나는 누군가 본인을 믿어주었다는 사실로 인해, 끝내 나쁜 노인으로 생을 마무리하지 않게 되길 바라면서. 내가 또 속아 눈물로 호수를 하나 더 만들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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