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 야간 산행
몇 주 전부터 내게 등산을 가자고 졸랐던 철가루13 계장님이 오늘 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다. 얼마 전 연휴에는 내가 혼자 부산 여행을 떠났고, 최근 주말에는 비가 내려서 등산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계장님은 오기가 생겨 몇 주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내가 집에 있고 비가 오지 않는 등산이 가능한 주말이 온 것이다. 우리 동네까지 오겠다는 약속 시간은 2시였는데 나는 1시 반에 기상했다. 눈을 떴더니 위경련의 기미가 느껴졌다.
계장님은 이미 한참 전에 출발해 곧 도착할만한 시간이었으므로 다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나와 등산을 가겠다고 몇 주를 기다린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꼭 등산을 가야 했다. 집에는 약이 없었고 할 수 없이 계장님에게 연락해 오는 길에 약국에서 진경제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위경련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진경제라는 단어가 생소할 것이다. 바로 전화가 와서 진정제를 사 오면 되는거냐고 묻는다. 몇 주를 고대하다 마침내 맑은 날 등산할 생각에 룰루랄라 오는 길에 느닷없이 뭘 진정하겠다는 건지 당황스러운 듯했다. 나는 진정제가 아니라 위경련을 진정시킬 진경제가 필요하다고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 계장님은 수년 전 같은 사무실에서 1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서로 나눈 대화시간이 1분이 되지 않은 사이였다. 어느 날 자정 무렵 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본인이 누군지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고 끊었다. 얼마 후 그 계장님은 이후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딱히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친분도 없는데 왜 저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게 된 것인가요, 하고 물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내가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날 이후 계속 내가 보였다고 했다. 약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안 친한 이성과 단독 술자리는 거부하기 때문에, 계장님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저런 사람들을 모아 술자리를 종종 마련하곤 했다. 뻔한 공무원 월급으로 여러 명의 술값을 지불하려면 지출이 크다. 어느날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가서 나는 예의를 갖춰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으로 링크가 왔다. 링크를 누르니 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이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나보다 몇 살 많은 계장님의 마음이 순수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계장님이 구해온 진경제를 먹고 나니 다행히 위경련의 기미는 가라앉아서 등산이 가능했다. 정상을 찍고 올라온 길이 가팔랐으니까 좀 완만한 길로 내려가보자고 즉흥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는데, 하산하고 보니 다른 지역이었다. 맛있는 칼국수집이 보여 저녁을 먹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손가락을 보더니 아이고 손이 너무 여려서 밥은 해 먹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둘이 면도 추가해서 먹었는데, 아주머니는 나갈 때 내게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한번 더 묻는다. 계장님은 자기는 안중에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다른 지역으로 와버려서 돌아갈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리는 즉흥적으로 산을 다시 타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해는 이미 졌다. 야간 산행은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렌턴도 없었다. 사람도 없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갔다. 계장님은 산짐승 멧돼지가 나오면 어떡할지 걱정을 했는데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멧돼지가 나오면 계장님을 밀어서 먹잇감으로 주고 그사이 나는 도망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 계획을 말해주었더니 둘이 같이 살 계획을 세우면 안 되냐고 한다. 같이 나무를 탄다든지. 멧돼지는 빠르기 때문에 둘이 나무를 타는건 힘들고 차라리 한 명이 희생하는 게 나은데, 뜯어먹을 살은 계장님이 더 많으니까 계장님이 먹히고 있는 사이에 내가 도망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했다. 산은 어두웠고 계장님은 겁에 질렸다. 언제 등이 떠밀릴지 모르겠고, 내가 특별히 조난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어 보이고, 무엇보다 본인은 헉헉거리며 숨을 토해내고 있는데 나는 왜 숨을 안 쉬는 거냐고 계속 물었다. 어디서 특수 훈련을 받고 온 거냐고, 사람이 맞는 거냐고 재차 확인했다. 어둠이 무섭지 않은지, 경사가 힘든지 않은지 계속 묻는데 무섭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나는 체력이 좋다.
혼자였다면 무서웠을 거다. 몇 주 전 혼자 부산 여행에 가서 야경 명소를 찾겠다고 길을 잘못 들어 아무도 없는 캄캄한 산에 혼자 갔을 때는 공포에 질렸었다. 오늘도 비슷하게 한 치 앞이 안 보이고, 길도 여러 번 잃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도 없고, 조난당할 위험과 낙상할 위험과 산짐승을 만날 위험도 있는데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나름대로 이리저리 길을 찾길래 나는 군말 없이 따라다녔는데, 그곳엔 이상한 성지가 있다거나, 길이 막혀있다거나, 공포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상한 종이조각이 끈에 잔뜩 매달려 있다거나 하는 여러 의미심장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깜깜한 산속에서 모험을 하는 느낌이 들어 즐거울 뿐이었다. 물론 계장님은 계속 내게 왜 숨을 안 쉬는 거냐고 사람이 맞냐고 아직 내가 필요한 건 맞냐고 계속 확인하긴 했지만.
나는 계장님한테 원래 혼잣말을 많이 하시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한다. 곧 깨달았다. 계장님은 내게 자꾸 말을 건 것인데, 내가 대답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잣말이 된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오늘 산을 17.41km를 탔다. 계획에 없던 야간에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계장님은 핸드폰에 의지했겠지만 나는 계장님을 의지했다. 믿고. 믿음은 사람을 안심하게 한다. 그게 길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산 속이고, 산짐승이 나올 가능성이 있더라도 무섭지 않다. 믿음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