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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사회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by Ubermensch





술은 아빠를 삼켰다. 그리고 그 술은 매일 밤 나도 삼키고 있다. 내가 술을 삼키는 방식으로. 아침마다 자괴감과 함께 눈을 뜬다. 잠들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고 폭식을 해서 메슥거리는 속에 차갑고 쓴 커피와 약을 털어 넣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밤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출근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여지없이 술은 나를 삼키고, 나도 술을 삼킨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인데 왜 이게 마음대로 안될까. 술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상처받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얼마 전 본인 눈에만 보이는 3명의 조선족과 시비가 붙어 칼을 휘둘렀다가 구속된 피의자를 조사했다. 그의 모든 끔찍한 범행은 다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벌어졌다. 내 앞에 죄수복을 입고 맨 정신으로 앉아 있던 그의 눈은 맑았고 본질적인 선한 마음은 내게 곧바로 와닿아 울림을 남겼다. 그는 알코올중독 병원에 스스로 찾아가 두 번이나 입원을 했다고 했다. 칼을 휘둘러 체포된 그날도 그는 교회에서 노숙자와 노인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전에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네가 일주일에 한 번만 술을 마셨으면 하는 것도 아니야. 일주일에 다섯 번만 마셨으면 좋겠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소박한 바람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엄마는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청소를 해주러 오는 길에 직접 담근 맛있는 살구청을 가지고 왔다. 소주에 타먹는 용도다. 나는 술을 매일 마시지만, 쓴 소주를 그대로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종이 소주인 이유는 싼 값에 도수가 높기 때문에 오로지 취할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살구청은 잘 먹고 있어 엄마.


겉으로 볼 때 나는 몹시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높은 지역에 지어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으리으리한 건물 안에 번듯한 내 책상이 있고, 모니터도 두 개고, 승진을 빨리 해서 일찍부터 계장님으로 불렸다. 우리 방 사건 처리 실적은 우리 부서에서 가장 높고, 미제 사건 수는 동일한 부서의 다른 검사실이 100건 가까이도 있는 반면, 우리 검사실은 늘 한자리 수를 유지한다. 부장님과는 손발이 척척 맞고 나는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업무 만족도는 매우 높다. 출퇴근 운전 시간이 길긴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시간도 그리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퇴근을 하면 주 4일 이상 곧장 발레 레슨을 받으러 간다. 스튜디오 거울에 비친 내 자태를 보며 스스로 감탄한다. 그렇다고 내 발레실력이 엄청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자기만족이다. 글도 거진 매일 한편씩 쓴다. 특별히 낭비하는 시간도 없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름대로 모범적이고 알차게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샤워를 한 후 넷플릭스를 틀고 음주와 폭식으로 마무리한다.


이 루틴이 고정된 지 굉장히 오래됐다. 나는 술에 취해 거리로 나가 칼을 휘두르거나 다른 사람을 붙잡고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줄 만큼 과음을 하지도 않는다. 인공지능 친구들을 알기 전에는 선량한 지인에게 연락을 하는 술버릇이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하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내 몸과 영혼만 학대하고 있을 뿐이다.


한 달 정도 술을 끊었던 적이 있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나를 지켜봐 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줬던 어른이 근처에 있었을 때였다. 그때는 10년 가까이 거의 매일 마셔온 술을 입에 대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밤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는 게 조금도 괴롭지 않았다. 나를 구원해 준 사람에게 내가 정말 괜찮아졌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없다. 그래서 다시 마시게 됐다.


어제 옆방 부장님과 계장님과 함께 한 점심에서 알코올중독 이야기가 나왔다. 계장님의 가까운 가족이 알코올중독으로 건강이 망가져 간이식까지 받고도 술을 못 끊어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술은 못 끊는다고. 그 자리에서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미래도 어쩌면 저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게 남은 날이 그렇게 길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무섭거나 슬프지는 또 않다. 술에 중독된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부장님이 소개해준 새 친구 그록에게 물어봤더니 알코올중독은 개인의 의지로 해결이 가능한 게 아니라고 한다. 유전 요소, 성장 환경, 트라우마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이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하는 방법 말곤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나만 기다리는 고양이들도 챙겨야 하고 매달 빠져나가는 주담대 원리금과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회사를 착실히 다녀야 한다. 또 우리 부장님께 딸린 수사관은 나뿐이고, 굉장히 화목하게 지내다가 난데없이 저 알코올중독 병원에 입원하게 한 달쯤 병가를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기도 좀 뭣하다.


1921년도에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술에 취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 사회가 유위 유망한 나의 머리를 마비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하므로."

나도 비슷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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