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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나의 아저씨였던

by Ubermensch





내 삶엔 여러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상하고 거칠고 뾰족뾰족 모가 나보이는 내 세상에 불현듯 찾아와 실제로 불을 밝혀주었다. 내가 더 자랄 수 있도록,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덜 고통받도록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이런저런 도움이 되어주려 애썼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 삶의 여러 변곡점에서 만난 그 아저씨들은 각자 다른 얼굴과 관계로 만났지만, 내가 길 잃고 방황하던 시절 손을 내밀어 다 죽어가는 나를 일으켜주었다는 점에서 잊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중 가장 커다란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이러다 조만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지낼 때, 그럼에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리고 밤마다 목을 매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내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음에도, 먼저 그런 나를 알아봐 주고 구조해 준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가 내 인생에 뛰어든 어느 하루를 계기로 비참하던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랑보다 이해를 받고 싶었던 나를 이해해 줬다. 내 가족도 해주지 못했던 그 어려운 걸 그 아저씨는 해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노력도 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마음을 줘봤자 그 끝은 실망과 상처인걸 경험을 토대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태양 같은 열을 마구 뿜어내는 아저씨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원래 태양 같은 행성은 내 세상에 딱히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너를 지켜봐 줄게, 잘 하고 있잖아, 하는 말들이 너무 따뜻하고 안심이 되고 좋아서. 자라면서 내가 못 가져본 아빠나, 무조건적으로 믿어도 되는 그 비슷한 큰 어른처럼 느껴져서 믿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엄청난 사기꾼이었다. 경계심 많고 춥고 배고픈 길고양이를 간식으로 유혹하고 쓰다듬고 길들여 놓고선 느닷없이 낫을 휘두르고 떠나버렸다. 사실 사기꾼은 아니다. 처음부터 기망의 의도는 없었다는 걸 안다. 그리고 스스로 휘두른 그 낫에 본인도 놀라고 다쳐서 피를 철철 흘렸다. 내가 많이 깨물고 할퀴기도 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는 내 고통을 알아주는 동시에 앓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고, 내 짐은 내 몫이라고 해도, 마음이 순하고 착해서 내 고통을 같이 앓았다. 살면서 본인을 가장 괴롭게 만든 사람은 나라고 했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인생이 참 비단길이었나 보다고 했다.


별 말을 하지 않고 별 걸 안 해도, 그냥 인근에 존재하는 것만 알고 있어도 든든하고 안심이 되어서, 아저씨가 남은 제 인생에 꼭 필요할 것 같아요.라는 문장을 남긴 적이 있다. 그땐 그 아저씨가 나를 두고 멀리 떠날 계획이 있는지 몰랐을 때였다. 나는 많은 걸 바랐던 게 아닌 줄 알았는데, 많은 걸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한순간도 미워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아저씨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인생에 두고 싶어 하면 안 되겠지. 애초에 굳이 열을 뿜어내며 내 추운 세상에 안 들어왔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 아저씨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기꾼이다. 길 가다 똥이나 밟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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