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죄를 사하노라, 평화를 빕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인생 네 컷 만화로 그렸던 내 인생 계획에 따르면, 나는 스물아홉에 대형트럭에 치어 죽는 것으로 생을 마무리했어야 한다. 하지만 뜻밖에 지금까지도 연장된 삶을 꾸역꾸역 살고 있으므로 나는 행복한 사람인 걸까?
사실 오늘 당장 죽어도 아무 미련이 없다. 가는 데 순서 없다고, 가난한 경기도민이라 하루 평균 3시간의 통근길 운전을 하는 상황에서, 역주행하는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어 죽을 수도 있고. 우연히 길을 걷다 낙하물에 머리를 맞아 죽을 수도 있고. 평소와 다름없이 잠이 들었는데 심장이 멈춰 돌연사를 할지도 모른다. 괴로운 생각이 유독 몰려드는 어느 새벽, 내가 자살 방식으로 정해둔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 목매달기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하고 많은 자살법 중 왜 하필 베란다 난간에 목을 매다는 방법이냐면, 나는 피를 무서워한다. 고등학교 때 강간을 당해 손목을 긋고 자해한 친구의 흉터를 본 이후 나는 손목 안쪽이나 핏줄을 제대로 못 보게 됐다. 만약 누가 의사를 시켜준다고 해도 일반외과 의사는 못 하고, 차라리 정형외과나 항문외과나 정신과를 선택하려고 한다.
추락의 방법도 제외한다. 평소 자이로드롭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짜릿한 놀이기구를 못 타기도 하고, 실패할 경우 괜한 장애만 남은 채 살아날 가능성도 있고, 성공을 한다 해도 시신의 상태가 처참해서 우연히 목격한 선량한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방법도 배제한다.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은 퉁퉁 불어 흉측하고, 깊은 물속은 춥고 어두워 무섭기 때문에 이 방법도 탈락이다. 약을 먹는 것도 안된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식탐이 많고 배고픈 것을 잘 못 견뎌서, 혼자 사는 내가 죽은 후 사료가 떨어지면 아마 내 살을 뜯어먹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발견될 시신의 모습이 끔찍할 거다. 나는 최대한 신선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해서, 존엄을 유지한 채 발견되고 싶다.
그래서 베란다에서 목을 매는 방법이 최선이다. 우리 집은 건너편에 앞 동을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건너편 동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할 테니, 고양이들에게 뜯어 먹히고 훼손된 채 부패해서 악취를 풍기며 끔찍하게 발견될 일이 없을 거다.
이런저런 방법을 자세하게 고민했다고 해서 평소에 내가 죽고 싶어 죽을 지경인 상태인 것은 아니다. 방방 떠서 방글방글 웃고 다닐 만큼 행복하고 신나는 상태까진 아니라도, 특별히 우울하다거나 힘들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병원도 다니고. 그냥 엉뚱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게 취미이자 특기라 그렇다.
사실 삼십몇 해를 사는 동안 이미 사력을 다했달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달까, 그래서 더 이상 세상에 남은 미련이 없어서 그렇다. 오늘 당장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해도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을 거다. 나는 해외여행도 한 번밖에 못 가봤고, 특별한 호의호식을 해본 적도 없고, 큰 부를 얻거나 엄청난 성공을 누려본 적도 없다. 또래 친구들처럼 때에 맞춰 가정을 꾸리지도 못했다. 자랑할 만한 특별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해본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내일 눈을 뜨면 삶에 대한 의지와 미련이 가득해질지도 모르고, 눈이 번쩍 뜨이는 말도 안 되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오늘 퇴근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기 때문에 유언을 적어본다.
유언은 별거 없다. 재산도 딱히 없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담대와 마이너스 신용대출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으니까 그렇게 상계처리를 하면 되겠고. 지방에 있는 집도 전세금 빼주면 역시 남는 게 딱히 없고. 9만 킬로를 주행한 15년식 뽀동이는 시세가 몇백만 원 되지도 않을 테니, 정말 가진 재산이랄 게 하찮다. 뭐 회사나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지급받을 얼마간 남는 게 있다면, 나는 아빠도 남편도 자식도 없으므로 민법 상속법에 따라 엄마한테 가겠지. 고양이 두 마리가 걱정인데, 고소한 견과류 정수리 냄새를 풍기는 네가 맡아주었으면 한다. 감자는 너를 엄청 따르기도 하고, 노엘이하고 서로 감정이 안 좋은건 알지만 걔는 이미 사람으로 치면 80살도 넘었으니 잘 좀 부탁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용서한다는 거다. 나를 슬프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괴롭게 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울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받은 상처를 돌려주려 애쓴 적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에 고통의 총량만 늘어날 뿐, 보복이나 복기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있었던 일은 이미 과거로 흘러가 버렸고, 용서하지 않고 되새겨 봐야 이미 지나가 묻어버릴 수 있는 일에 오히려 숨을 불어넣어 주는 꼴이다. 그냥 담담하게 용서하고 잊어버리면, 상처가 아문 후 새살이 나는 것처럼 없던 일이 된다. 흉이 조금 남을 수는 있어도 아문 살에 더 이상 통증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의 죄를 사해드립니다. 그리고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