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hra Ke-dhabhra
나에겐 남들에게 숨기고 사는 초능력이 몇 가지 있다. 생각만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염력이나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대단한 초능력은 아니다. 어릴 때 순간이동을 하겠다며 눈을 감고 몇 발짝 뛰어간 뒤 눈을 뜨고 나서 눈 깜짝할 새 이만큼이나 순간이동을 했다고 즐거워한 적은 있다.
내가 가진 초능력중 하나는 비폭력적으로 공격하기다. 굳이 내 입을 더럽히는 상스러운 욕이나 고성을 내지 않고, 물리적 폭력도 행사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인데, 대단한 전투태세라든지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몇 초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잠깐의 시선이면 충분하다. 비난과 경멸을 담아, 네 죄를 알겠니? 부끄럽지?라는 물음을 담아. 상대의 눈을 물끄러미, 천천히 응시한다. 이때 주변 공기도 이용하면 효과적이다. 공기의 온도를 싸늘하게 식힌 다음 몇 바퀴 휘감아 상대에게 보낸다. 상대는 공격적 언사나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님에도 뭔지 모를 냉기와 시선에 움찔해서 변명을 하거나 본인의 잘못을 묻게 된다.
다른 하나는 사람 조종하기다. 그건 내가 뭔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가 생겼을 때, 상대방에게 그 행위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해주게 만드는 기술인데, 그것도 간단하다. 눈치 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내가 직접 하는 거다. 가령 너무 무거운 짐을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남에게 들어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내가 드는 거다. 그럼 그 모습을 지켜본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나선다. 이 기술은 좋은 점이 서로 기분이 좋다는 거다. 요청을 하는 건 왠지 남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내 마음도 불편해지는데, 상대방이 본인 마음에서 우러나와 제안한 것이므로 내가 미안함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감사 표시만 충분히 하면 상대방은 으쓱하며 본인의 효용 가치를 기쁘게 누린다. 나도 아쉬운 태도로 요청하지 않고 원하던 바를 충족했으므로 만족스러운 결과다.
또한 나는 정신적 고문 전문가다. 북한에 살 때 배워온 특수 기술은 아니다. 사실 북한에 가본 적도 없다. 고문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사람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건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의 폭격 같은 공격적 방식이 아니다. 그런 건 수준이 낮고 상대방이 받는 타격도 일시적인 감정 오염정도에 그친다. 개싸움을 해봤자 개똥만 내 몸에 튀어 지저분해질 뿐이다. 더 깊게, 더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건, 사람이 가진 선한 마음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후회나 반성의 여지를 남기거나 연민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이 방법 역시 어떤 특별한 계략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투명한 진심과 꾸밈없는 진실을 꺼내보여 주면 된다. 그런 태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보게 해 주어서, 애써 외면하던 모습을 비춰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성찰의 여지를 남겨준다.
우리는 승패를 따질 때 강자가 우위에 서서 약자를 짓밟는 모습을 익숙하게 여긴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부족하고 연약한 면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숨기지 않고 개의치 않으며, 상대의 눈을 보고 똑바로 마주 서있을 때, 그 당당한 모습이 도리어 상대의 전투력을 꺾을 때가 있다. 오히려 그 순수한 태도로써 보호받고 존중받게 되고, 본디 가진 힘의 세기와 무관하게 이겨버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나 귀여운 동물을 상대로 전력을 다해 싸울 생각이 들지 않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지지 않는다.
또 나에게는 사람을 쉽게 홀릴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몸을 이용해서 상대의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든지, 웃음을 남발하며 애교를 부린다든지, 과도한 칭찬이나 리액션으로 상대방을 띄워주는 류의 저급한 방식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성격상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한평생 어느 집단에 가든 남자들의 고백을 줄줄이 받곤 했다. 이 방법도 간단하다. 포커스를 상대가 아닌 나에게 두면 된다.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떤 언행을 계산한다거나, 상대의 취향이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 자체가, 내가 그에 비해 뭔가 부족하다는 포지션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대신 포커스를 나에게 두면, 타인이 나에게 맞추려고 한다. 내가 타인을 보는 게 아니라, 타인이 나를 유심히 본다.
남들에게 요구하고, 바라고, 이기려 들고, 싸우고, 더 가지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 힘을 빼고 한걸음 떨어져 시공간과 여유를 두는 것이. 놀랍게도 내가 원하는 바를 더 손쉽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