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람

기대를 배신하는 이유

by Ubermensch





세상이 가혹하고 팍팍하기 때문에 촉촉하고 따스한 감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고의로 배반한다. 내가 쓰는 글은 친절하거나 희망과 위로를 주거나 딱 떨어지는 정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힐링 에세이에 상냥하게 녹아있는 메시지들이 내겐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따뜻하다, 관계를 통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간다, 함께 버티자, 서로 공감해 주자, 안아주자는 다정하고 예쁜 말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내 성정이 타고나기를 모질고 차가운 사람이라서 그런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게 보이거나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말로 그런 건 아니지 않겠냐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거나 내 기준이 무조건 맞다거나 내가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종종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윤리적이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거짓되거나 꾸며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생각을 타인이 보고 듣기 좋기 위해 왜곡하거나 포장하기 싫다. 사고와 감정과 기준에 대해 정직하고 싶어서 그렇다. 그게 비록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불친절해 보이고, 할 말을 잃게 만들고, 기꺼이 내밀려던 손을 무안하게 만들지라도. 관계는 위험을 포함하고, 사랑은 왜곡될 수 있으며, 안정은 꼭 목표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따뜻하고 자애롭고 누군가를 안아주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에 충분히 많다. 그렇기에 동시에 누군가는 세상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신념인 것이다. 그게 스스로의 고립을 초래한다 할지라도, 보편의 기준과 평범과 행복에서 멀어진 삶을 살게 된다 할지라도. 어제 40°C의 체온을 가진 어떤 작가님은 내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후자 쪽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줄 생각이 없다. 나도 편안하지 않다. 나는 항상 불편하다.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스스로도 완전히 해석해내지는 못한다. 편안한 상태에서는 사고가 필요 없다. 안주만 있다.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멈춤을 의미한다. 불편한 상황에 처해야만 우리는 사고하기 시작한다. 이 불편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 극복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확장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래서 나는 자꾸 건드리고 싶어진다. 선량한 사람들의 기대를 고의로 배반하고, 탈주하고, 답 대신 질문을 남기고, 무례해 보일 것을 알면서도 정리된 완결 대신 미완의 서사로 닫아버린다. 또한 그것을 일면 즐긴다. 위안 대신 고통을 남기고 싶다. 거짓 공감이나 위안을 주고 싶지도 않다. 내 방식이 약간 변태적으로 보이고, 찝찝함과 당혹스러움을 남길지라도 썩 개의치 않는다.


나는 대중적으로 인정받거나 공감받기를 일찍이 포기했다. 포기라기보다는 애초에 기대한 적이 없다. 이 태도는 오해받기 쉽지만 자조적이라거나 오만한 입장은 아니다. 애초에 글을 쓰는 이유가 누구를 설득하거나 위로하는 목적이 아닌 까닭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싶고,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내서 뭔가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 뭔가가 뭔지는 나도 모른다. 생각은 각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