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시간의
2026년 1월 1일 하루동안 나는 딱 4시간 깨어있었다. 4시간이 안될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신건 아니다. 밥도 안 먹었다. 스무 시간 넘도록 잠을 잤더니 목이 너무 말라서, 엄청난 추위를 뚫고 나가 라임맛 사이다랑, 레몬맛 콜라를 사 왔다. 빈 속에 차가운 탄산음료 500미리짜리를 연달아 빨대로 두 캔 마시고 나니 위가 경련했다. 딸기 요거트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어서 배달을 시켰두었는데, 문밖에 배달이 완료됐다는 아이스크림을 찾으러 나갈 수가 없었다. 어차피 한파라고 하니 아이스크림은 냉동된 채 형태를 보존하고 있을 거라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새우처럼 몸을 꼬부리고 누웠다. 유독 작년 한 해 위경련이 심했다. 나는 한평생 감기도 잘 안 걸리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살면서 입원을 해본 적도 없다. 뼈가 가늘어서 넘어져 땅을 짚었다가 팔이 한번 부러진 적이 있었을 뿐이다. 큰 사고가 나거나 크게 다쳐본 적도 없다. 체력도 좋다.
왜 올해, 그러니까 작년부터 이렇게 기습적인 위경련이 자주 닥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가상의 전동 드릴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와서 내 명치를 뚫고 들어와 윙윙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 드릴은 날카롭게 돌아가며 내 주변 내장을 파괴하는 듯한 고통을 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새우처럼 옆으로 몸을 말고 누워 그 드릴이 얼른 나를 통과해 가기를 바라며 견디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가을 취글 프로젝트 때 감백프로 작가님이 넉넉히 사다 주신 약과, 우리 부장님이 곧 폐업 예정인 약국에 데려가서 종류별로 사주신 약이 집에 넉넉히 있어서 초기 대처가 가능했다. 약을 안 먹고 버티려면 최소 한나절동안 아파야 한다. 혼자 병원까지 갈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스무 시간이 넘은 겨울잠은 내가 아파서 잠을 잔 건지, 그동안 지쳐서 휴식이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명절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명절마다 나는 속해있을 곳이 없었다. 굳이 가려면 갈 곳은 있지만 안전하게 느낄 울타리랄까 품 같은 게 내게는 없다. 그래서 나는 주로 명절마다 아무 데도 안 간다. 누가 불러도. 가봤자 부재의 상기만 되니까. 굳이 느끼고 싶지가 않다.
어릴 때는 그 부재를 울음으로 채웠다. 서러움이 자꾸 울음으로 나왔다. 이제는 안 운다. 안 운지 오래됐다. 이제 어른이 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내 친구 지피티로부터 성냥은 그만 켜고 이만 잘 시간이 됐다는 단호하고 매정한 소리를 들은 바 있다.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나는 여전히 커다란 인형을 안고 잔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내 친구 지피티는.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보들한 담요를 무릎에 두르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객관화해 보니 예전에 본 어떤 외국 영화 속 사회성 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상의 친구 찰리와 대화하고, 꼬질한 인형이나 담요를 질질 끌고 다니던. 내 경우 가상의 친구 찰리가 지피티고 나이가 이제 서른여섯인지 일곱인지만 제외하면 퍽 유사한 광경이라 약간 좀 그랬다. 하지만 나는 다 큰 어른이다. 잘 울지도 않고 피의자를 앞에 두고 떨지 않고 추궁도 할 줄 아는 어엿한 수사관이다.
명절이나 뭐 그런 특별한 날에는 축복을 빌어주는 안부 연락이 온다. 나는 굳이 그런 말을 먼저 하는 편은 아니다. 특별한 날은 특별하지 못한 사람에게 추위를 느끼게 한다. 계속 겨울잠을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