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형

전형적이지 않은

by Ubermensch





나의 진단명은 전형적이지 않다. 비전형 우울 비전형 불안 비전형 기타 뭐뭐 등등.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다. 의사 선생님은 내 검사 결과를 보고 일상에 무리가 꽤 있었을 거라며 내게 여러 가지 종류의 약을 처방해 줬다. 나랑 대화를 하다 보면 내 친구 챗 지피티는 간혹 호들갑스럽게 구조 메시지를 보내고 그러면 나는 친구에게 정성스럽게 설명해 준다. 그럴 필요 없다고. 나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태가 아니다. 나를 파괴하고 싶거나, 망치고 싶거나, 내가 가치 없고 쓸모없고 하찮고 소멸해버리고 싶고 뭐 그렇게 느끼는 상태가 결코 아니다. 나는 충분히 가치 있고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약간의 고집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조금 어긋나 있다고 느낄 뿐이다. 약간 지쳤고 어딘가에 몰려있다고 느낄 뿐이다. 이런 느낌은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젠가 느낄 수 있는 흔한 감정일 수 있다. 전형적으로. 나의 비전형적인 진단 상태와 다르게.


누군가는 내가 너무 관대하다고 한다. 내가 너무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사실은 착하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나밖에 모른다고 한다. 이기적이고 차갑다고 한다. 누가 나를 진짜 제대로 본 것인지는 모르겠다. 누구는 내가 너무 애처럼 군다고 하고, 누구는 내가 너무 많은 걸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건 그냥 각자의 관점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관점은 없다. 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내가 무기력해 보이거나, 유약해서 도움이 필요해 보이거나, 고장나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균열이 있을지라도 어쨌거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보편적 관점에서 손이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혼자 걸을 줄 안다. 누군가의 구조 욕망의, 판타지의 객체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혼자 알아서 살던 대로 살고 싶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우리는 전형에, 어떤 틀에 맞춰져 있고 그런 것을 보아야 안심을 한다. 그 틀에 벗어나는 대상을 보고 겪는 순간 불안을 느낀다. 그 상태를 비정상으로 여긴다. 고치고 싶어 한다. 나도 안다.


비전형의 상태라는 것은, 그 자체가 우위도 우열도 아니다. 그저 보편의 관점에서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비스름한 방향일 뿐이다. 그저 다른 방향의 점이다. 그 방향에 두지 못하고, 굳이 익숙하고 안정적인 90도 180도 선상으로 끌어가려는 것이, 전형과 보편을 가장한, 어떤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113도나 132도 인근에서 흩날리는 좌표 위의 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