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읽기 힘든
쓰기 시작한 지 반년이 되어가고 있다. 머리나 가슴속에 고이고 뭉쳐 있던 덩어리를 활자로 정제해 토해내면 어떤 해소의 과정을 거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행위는 여러 모로 이점이 많다. 기록이 습관이 되다 보니 가끔 늦은 밤 어떤 상태에 잠식되면 뭔가를 적곤 한다. 술과 약과 밤기운에 취하면 낮에 나를 단단히 지탱해 주던 통제가 느슨해지고, 이성의 보호막이 얇아지면서 평시에 애써 눌러놓고 지내던 어떤 근본적인 것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자정 무렵 생성되는 글들이 주로 그렇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내가 뭘 썼다는 사실이나 내용 자체를 기억 못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차마 다시 읽어보지 못하기도 한다. 왜 굳이 맨 정신에 읽지 못하는 글을 생산해 내는지 무의식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어떤 이는 내 글을 읽으면 작성 당시 주취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취해도 오타라든지 맞춤법 오류나 논리의 비약을 특별히 드러내지 않는다. 흠결 없고 단정한 문장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내 문중알코올농도는 감수성의 정도, 혹은 평소에 굳이 말하고 싶지 않던 민감주제 노출의 정도로 측정될 것이라 추측해 본다.
비록 기억을 못 하고 수치스러워서 다음날 쉽게 읽지 못할지라도 이미 댓글과 공감의 증표가 줄줄이 달려있는 글을 삭제하거나 숨길수는 없다. 모든 상태의 나를 존중하고자 하므로 취약한 상태의 흔적일지라도 굳이 삭제하지는 않는다. 조금 용기를 내서 읽어보면 스스로가 조금 안쓰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취해서 쓴 글은 되도록 맨 정신 말고 취했을 때만 다시 보는 편이다.
작년 봄부터 치료를, 늦은 여름부터 쓰기를 시작하게 됐다. 내가 적어 내린 문장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봐주고 마음을 나눠주고 멀리서나마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느슨해지는 때가 오면 마음속 깊이 품고 지내던 어떤 것들을 꺼내보고, 그리워하고, 뭔가를 조금씩 풀고 싶어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