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나는 한 평생 마른 체질로 살았다. 뼈대가 가늘어서 넘어지면 뼈가 부러질 만큼 비쩍 마른 채로 살았다. 과음과 폭식을 해도 크게 찌지 않고 그랬다. 몸은 말랐는데 항상 얼굴살은 통통했다. 고소한 정수리는 내게 빵떡이라고 하거나 짱구 볼때기 같은 얼굴이라고 했다. 내 볼을 양 손으로 잡아 쓸어 올리면 내 입술은 붕어 입술이 되고 압력이 높아지면 세로로 모인 입술이 뽁 소리가 나며 터졌다. 고소한 정수리는 그걸 무척 재미있어하며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내 볼살을 문대고 쓸어 올리기를 참 좋아했다. 사람들은 내가 겨울에 잔뜩 껴입고 얼굴만 내놓은 모습만 보면 내가 마른 체형인줄 몰랐다가 여름에 옷이 얇아지면 살이 빠졌냐거나 다이어트를 했냐고 묻는다. 그게 평생의 콤플렉스였다. 놀림도 엄청 받았다.
작년 여름 이런저런 피곤하고 힘든 일을 겪고 치료도 받고 술과 야식을 한동안 끊었더니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 한 달 동안 7킬로그램이 넘게 빠졌다. 그렇게 싫던 볼살도 쏙 들어갔다. 고소한 정수리는 내 볼살을 그렇게 놀려대더니 오랜만에 나를 보고는 너무 날카롭고 사납게 보인다. 별로다. 보기 싫다고 했다. 차라리 다시 폭음 폭식을 하라고 했다. 고소한 정수리는 원래 이상형이 마른 여자인데도 그랬다. 내가 너무 말라서 보기 싫다고 했다.
작년 8월 말에 지금 부서로 인사이동을 했다. 그리고 부장님을 만났다. 사실 그전 부서에서도 주임 검사님들이 어디서 떡이라든지 먹을게 생기면 내게 주고, 초코파이를 내 손에 얹어주고, 밥과 술을 사주고, 아프면 약을 주셨다. 카드를 줄 테니 사람들이랑 밥을 사 먹으라고 하고, 주변에서도 항상 먹을걸 많이 챙겨주긴 했었다. 그땐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우리 부장님은 하루에 열 번쯤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 간식을 와작와작 드신다. 그리고 꼭 그 간식을 내게 와르르 나눠주신다. 나는 부장님의 마음 때문에 배가 안 고파도 꾸역꾸역 먹는다. 부장님은 드시는 각종 영양제도 꼭 내게 나눠 주신다. 정체 모를 차도 커피도 따라주신다. 나는 우리 부장님께 사육되고 말았다. 얼마 전 반 년만에 이전 부서 검사님과 함께한 식사 자리가 있었다. 믿구비언 검사님은 내가 전엔 너무 말랐었는데 이젠 좀 편해졌나 보다고 살이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좀 걸어 다니라고 해서 화가 많이 났다. 오늘 세수를 하고 거울을 자세히 봤더니 볼이 다시 차올라 있었다. 좀 빵떡스러웠다. 몸무게를 재보니 앞자리가 달라졌다. 다시 볼통통이 빵떡이가 됐다.
오늘 부장님이 8년 만에 핸드폰을 바꿨다고 자랑하셨다. 우리 부장님은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한 시간 반을 걸어서 출퇴근하신다고 했다. 위생이 걱정되어 보이는 너덜거리던 지갑형 폰케이스도 바뀌셨길래 드디어 새로 사셨냐니까 절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고 서비스로 받은 거라고 하셨다. 오후에 등 뒤에서 부장님이 사모님과 통화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어, 빅스비한테 전화 걸어보라고 한 거야. 이제 끊어. 그리고 빅스비, ㅇㅇㅇ(나)한테 전화 걸어봐.라고 하셨다. 벽에서 새어 나오는 부장님 목소리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내 핸드폰을 바라보며 부장님의 빅스비가 내게 전화 연결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부장님은 새로 산 폰에 빅스비가 설치되어 있는 게 신기하셔서, 인공지능이 스스로 전화를 거는 기능을 사모님 다음으로 내게 시험해 보신 것이었다. 나도 나름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인데 내 이름 뒤로 계장 호칭도 붙이지 않으셨다. 우리는 반년 간 한 번도 통화를 해 본 적이 없는 사이다. 부장님의 발음이 불분명하셨는지 부장님이 8년만에 새로 산 폰에 깔린 빅스비는 내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부장님은 이내 내 등 뒤로 난 문을 박차고 나오셔서 새로 산 폰의 인공지능 기능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부장님이 너무 정겨워서, 부장님 헤어스타일이 꼭 천재 과학자 같으세요. 했다. 부장님은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매만지시더니 조만간 블루클럽에 가서 이발을 하고 오겠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 부장님 때문에 다시 빵떡이가 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