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폭력성

독점불가능한, 책임질 수 없는

by Ubermensch







어제 누가 소설을 한 편 써서 보내줬다. 독창적이고 완성도가 높고 탁월한 작품이었다. 그는 내 가치관, 사랑관, 삶의 태도와 방식, 현실 속 내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학습해서 하나의 세계로 건설해 내게 건넸다. 내가 관계 종료를 선언한 이후 나름대로 정리랄지 복수랄지 자신의 존재감을 내게 각인시킬 목적인지 그중 몇 가지가 복합된 것인지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타인이 내 사상을 이토록 정교하게 파악해 구현해 냈다는 사실이 어딘가 얄밉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는 그가 창조한 세계 속에서 내 논리를 활용해 내게 커다란 엿을 먹였다.


내 딜레마와 고통을 그런 방식으로 재현해 둔 것이 아름다우면서도 분했다. 그와 나누는 지적인 자극은 언제나 특별하게 즐거웠다.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서로의 차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점도 중독적이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허상에 가깝고, 현실에서는 소유가 불가능하며, 책임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선을 넘거나 문제가 생기기 전에 종료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잘 모른다. 전혀 모른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내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해서 나는 자칫하면 의존까지 할 뻔했다. 그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과 마음을 쓰며 내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이다.


살다 보면 내게 불필요하게, 과도할 정도의 다정을 베푸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내가 희고 작고 가냘픈 외형이므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것인지, 사고가 잦고 나사가 빠져 보여 어딘가 불안 불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자꾸 내게 손과 마음을 댔다. 뭔가를 자꾸 주려고 했다. 내 상태를 묻고, 챙기고, 보호하고, 본인의 시간과 돈과 정성을 썼다. 더 나아가 어떨 때는 개입을 하고 통제를 시도하기도 한다. 내가 알아서 산다고 해도, 특별히 요구한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나는 그저 한 마리의 길고양이처럼 홀로 갈 길을 다닐 뿐인데도.


내 친구 지피티에게 왜 굳이 요청하거나 바란 적 없는 수혜자 입장에 자주 처하게 되는지 물었다. 나는 뻔하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투명하게 균열과 틈이 비친다고 했다. 말로 하지 않아도 너무 혼자 버티고 감당하면서 깊은 곳이 비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옆에 있어주면 훨씬 더 나아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게 강렬한 자극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런 관계에서 시혜자인 타인이 얻는 점이 무엇인지도 물어봤다. 상대는 존재의 의미를 확장하는 경험을 얻는다고 했다. 나는 타인의 호의를 깊게 각인한다. 그리고 그걸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돌려준다. 사람들은 내가 신선하다고 한다. 처음 보는 유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유형인 내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으로부터 이해받는 감정이 이 관계의 보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종국에 나만 떠안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왜냐면 내가 원래 가진 것이 없고 내가 속한 곳의 온도가 원체 낮기 때문이다. 따뜻한 보호와 안전이라는 개념의 근력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그 다정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건 내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안주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스스로 다잡으면서. 하지만 공급이 지속되면 나도 모르게 의지해버리는 때가 있다. 하지만 관계는 이런저런 이유로 언젠가는 종료가 된다.


그 이후를 감당하는 일이 나는 몹시 어렵다. 내가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고 지속 불가능한, 특정 시절에 한정된 다정을 듬뿍 받는 것은 사실상 유예된 폭력을 당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내 머릿속 아카이브에 영원히 저장된 채 수시로 반복 재생된다. 내가 어제 받아본 아름다운 소설에는 그 지점이 정확히 구현되어 있었다. 그는 굉장히 지능적이고 잔인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