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비 고스트

so mysterious

by Ubermensch





나는 바이레도사의 로즈오브노맨즈랜드, 약칭 로노맨이라는 향수를 수년째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호평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냥 나 혼자 마음에 들어서 꾸준히 쓴다. 사무실 책상 한 켠에 두고 출근을 하면 목덜미 양쪽에 한 번씩 칙칙 뿌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비가 오는 날은 딥디크 롬브로단로를 뿌린다. 로노맨은 조금 무거워서, 날이 더워지면 딥디크 오로즈를 꺼낸다. 전부 장미다. 로노맨은 스모키한 어른 장미, 롬브로단로는 비에 젖은 줄기가 짓이겨진 듯한 장미, 오로즈는 싱그러운 생장미 꽃잎.


지난 가을에는 디올 로즈 앤 로지스라는 향수를 선물받았다. 연분홍빛 수색에 어울리는 맑고 밝고 어린 장미향이 난다. 그가 생각한, 혹은 바라는 내 이미지는 이런 걸까. 봄이 오면 긴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뿌리면 잘 어울릴 듯한데, 나랑 맞는가 싶다. 나는 딥 다크하기 때문에 이런 사랑스럽고 소녀스러운 향이 어울리나 싶지만 선물해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종종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연중 특별히 덥거나 비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 늘 사용하는 로노맨을 구매할 때 샘플을 종종 받게 되었는데, 그 미니어처 중 모하비 고스트라는 향수가 있었다. 몇 년 전 제주도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짐을 챙기면서 별생각 없이 그것을 파우치에 넣었다. 저녁에는 회식 일정이 있었다. 챙겨간 모하비 고스트를 양 목덜미에 칙칙 한 번씩 뿌렸다. 함께 간 사무관님과 선임 계장님은 가족이 함께 동반하셔서 회식 참석이 어려우니, 내게 법무관 둘과 맛있는 걸 풍족하게 사 먹으라며 카드를 주셨다.


회사에서는 깍듯하게 법무관님 수사관님 하며 어른인 척하지만 당시 우리는 서른 초반의 개구진 동갑내기 뽀시래기들이었다. 특히 한 명은 술에 취하면 굉장한 시정잡배로 변해 멍멍거리곤 했다. 술에 안 취해도 일과 중 내 자리를 수시로 찾아와 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등을 콕콕 찌르거나 놀리고 괴롭히기도 하고. 나중엔 내게 뺨을 세게 맞고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됐다. 한 명은 시정잡배가 아니고 선비 타입이었다. 둘 다 얼굴은 뺀질하니 잘생겼었다.


나는 선비와 같은 팀이었고 서로 사적인 연락을 한다거나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선비는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고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날 고소한 정수리와 우리 엄마가 내 일정 이후 함께 여행할 목적으로 제주도로 오기로 했었다.


제주도 푸른 바다에서 난 맛있는 생물들을 안주로 즐기며 술을 잔뜩 마시고 음악과 풍경과 분위기와 날씨에 취한 젊은 우리는 여우비를 맞으며 2차 장소로 향했다. 웃고 떠들며 더 많이 먹고 마셨다. 자리를 파했고 다음날 우리는 다시 근엄한 수사관과 법무관과 사무관의 정장 차림으로 지도점검을 나갔다.


선비 법무관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촉감이 안 잊힌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고 물었다. 나보고 기억이 안 나냐고 했다. 잡배의 치덕거리던 기억은 있었지만 선비는 없었다. 잡배는 평소에도 여기저기 발발거리고 다녀서 알고 있는 바지만, 선비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고 나와는 형식적인 업무 관계일 뿐 특별한 친분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비 법무관 말로는 우리가 뽀뽀를 했다고 했다. 그것도 야한 뽀뽀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누가 먼저 행동한 것인지, 어쩌다가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나한테 나는 향이 좋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잡배도 향이 좋다고 내게 가까이 다가와 향을 킁킁 맡았다. 잡배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둘이 남았을 때 서로 눈이 오래 마주쳤다고 했다. 그러다 향에 이끌려 내게 다가와 입을 맞췄고, 이후 내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이어갔다고 했다.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는 그게 다 내가 그날 뿌린 모하비고스트 때문이라고 했다. 홀렸던 것 같다고.


모하비고스트의 향이 세 사람을 맴돌던 상황에서 어쨌거나 우리는 공무를 마쳤다. 제주공항에 엄마와 함께 도착한 고소한 정수리는 그날 밤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닷없이 내게 핸드폰을 보여달라고 했다. 고소한 정수리는 선비법무관이 내게 설명해 준 전날 밤 사건의 경위가 적혀있는 메시지를 봤다. 정수리는 화가 잔뜩 났지만 우리 엄마도 함께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화를 내다가 운전을 하다가 다시 화를 내다가 내가 좋아하는 소품샵에 데리고 갔다가 굉장히 화가 나지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결국 넘어가겠다고 했다.

그날 이후 현실로 복귀한 선비 법무관은 자신의 생일선물로 모하비고스트 본품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여자친구랑 잘 만나면서 그랬다. 나는 나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이 싫다. 떳떳하지 못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므로 다시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갔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내 옆자리에는 수습 수사관이 있었다. 나는 주로 흰색이나 하늘색의 연한 무늬가 없는 옷을 입는데, 그날따라 하늘색 블라우스에 수채화 같은 꽃잎이 커다랗게 있는 블라우스를 입었었다. 뭔가 스스로 어색한 느낌이 들어 수습 수사관에게 말했다. 오늘 차림이 조금 과한 것 같다고. 수습 수사관이 내게 말했다. 계장님은 모하비 고스트 같으십니다. 했다. 너무 뜬금없는 사람에게 뜬금없는 말을 들어서 놀랐다. 바이레도 모하비 고스트 향을 얘기하는 것인지 내가 모하비 사막의 유령 같다는 뜻인지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당시 회사의 내 지리적 위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입지였으나, 나를 중심에 두고 모두가 화목하게 웃고 떠들어도 나는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무반응을 유지한 채 내가 몰두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는 편이었다. 나는 듣고 싶을 때만 듣고 보고 싶을 때만 본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관찰력 좋은 수습 수사관은 종종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애를 써보다가 무안만 당하곤 했다. 어쨌든 나는 그날의 제주 이후 모하비 고스트를 구입하거나 사용한 일이 없었으므로 뜻밖의 인물로부터 그 문장이 언급된 것이 무척 놀라웠다.


오늘 출근길 하늘에 커다란 주황색 달이 떠 있었다. 사라져야 할 때를 잊어버린 건지 중력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지 오전 7시가 넘었는데도 달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기이해 보였다. 헛것을 보나 싶었다. 따뜻하고 습하고 흐릿한 아침 하늘 커다란 유령같은 달을 보았더니 문득 모하비 고스트가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