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내기
연휴가 지난 다음날 나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공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지난번 연말 연휴 때 우리 부 모든 부장님들이 연가를 쓰시고 우리 부장님만 출근해서 우리 방은 순번이 아님에도 구속사건 배당을 받게 된 일이 있었다. 그날 나는 부장님 방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 단둘이 초밥을 나누어 먹어야 했다. 양쪽 검사실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관님은 이번 연휴 다음날 옆방 부장님과 계장님도 연가를 쓴다고 하자, 저번에 나처럼 본인도 부장님과 단둘이 식사를 함께 할 상황에 처할까 봐, 황급히 계획에 없던 연가를 쓴다고 했다.
그게 다 나 때문이라고 했다. 실무관님은 마침 우리 사무실에 오신 부장님께 냉큼 저 목요일에 연가 쓰겠습니다. 했고 부장님은 안돼_ 하고 절규하셨다. 나도 뒤따라, 저도 목요일에 공가 쓰겠습니다. 했더니 부장님은 연이어 안돼_ 하고 절규하셨다. 연휴 다음날 우리 부장님만 홀로 출근하실 것 같다. 부장님은 어디 갈 곳이 없다고 하셨다.
부장님만 계셔서 우리 방으로 구속 사건 배당이 또 될 것 같다. 나는 조사하는게 재미있으니까 그냥 우리 부서 모든 구속 사건을 우리가 다 받고 대신 귀찮은 재기수사명령사건을 안 받는건 어떨지 제안해 보았다. 구속사건은 제가 전부 조사할테니 부장님은 공소장만 쓰시라고 했다. 부장님은 싫다고 하셨다. 실무관님도 싫어하셨다.
오후에는 갑자기 앞자리 계장님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시더니, 이따 부장님 나오시면 다음 주 윤석열 선고 결과 간식 내기를 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알겠다고 했다. 81년생 자칭 MZ 계장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뭔가를 만드시더니 아기 실무관님과 나를 불러 모았다. 나는 이러니까 블라인드에 우리가 노는 부서인 줄 아는 글이 올라오는 게 아니냐고 투덜거리며 그쪽으로 가봤다.
아침부터 출국금지 문제로 애를 먹으셨던 계장님은 마침내 할 일을 끝내시고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종이에 정성 들여 사다리 타기를 그려두셨고, 아래에는 선고 결과가 적혀 있다는데 우리가 볼 수 없도록 종이가 가로로 반 접혀있었다. 완성도가 높았다. 의아한 부분은, 분명 선고 결과 맞추기 내기인데 선고 결과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단순 사다리 타기로 간식 내기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사다리 맨 위에 적힌 번호만 선택할 수 있었다. 계장님은 1부터 4까지 번호만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부장님 방 문을 거세게 두드려 부장님을 불렀다. 무슨일 있냐고 놀라서 나오신 부장님도 사다리 타기에 합류하셨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 의아한 점이 있었다. 앞자리 계장님은 옆방 부장님의 전담 계장님이시면서, 이런 놀이에 당연하게 본인과 무관한 우리 부장님과 함께하고, 직속상관이신 계장님네 부장님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신다.
우리 넷은 우리 부장님 생일맞이 같이 찍은 스티커 사진도 있다. 물론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왜냐하면 옆방 부장님은 우리 부장님과 달리 일반적인 평범한 부장검사님이시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평소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여기며 늘 소외당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4번을 골랐다. 계장님은 1번, 아기실무관님은 2번, 우리 부장님은 3번을 골랐다.
계장님은 자체적으로 지어낸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기실무관님-무죄 / 계장님-사형 / 나-무기금고 / 부장님-무기징역 / 처음에 아기 실무관님은 사다리 타기 결과로 무죄가 나오자 본인이 몽땅 덮어쓰게 생겼다며 나 안해, 하며 투정을 부렸다.
모두가 사다리를 다 타고나서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다음 주에 나올 선고형은 하나일 테니 결과를 맞추게 될 사람은 한 명일 것이고 나머지 세 명은 못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를 맞춰서 이긴 사람이 간식을 사야 하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사형이나 무죄보다는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 그러니까 우리 부장님 아니면 나일 것 같았다. 애초에 선고 결과 맞추기 내기를 하기로 한 상황인데 선고 결과를 고르지도 못하는 데다가 이긴 사람이 간식을 사야 하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괜히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