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의 모호함에 대하여

전문가의 손길

by Ubermensch







내가 수사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가장 많이 접한 범죄 분야는 성 관련이다. 수사든 재판이든 어쩌다 보니 성범죄 전담 부서에서 대부분 근무를 하게 됐다. 성범죄는 그 특성상, 밀실에서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명백한 강간사건처럼 체액이나 디엔에이의 수집이 가능한 경우가 아닌 경우라면 유무죄를 따지기가 더욱 애매해진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고, 어느 선까지가 묵시적 허용이나 합의냐 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범죄의 성립이 모호해지는 까닭이다.


재판을 쭉 지켜보면 의외로 무죄인 경우도, 생각보다 중한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다. 경제 범죄 등 여타 물증이 많은 사건에 비해 성범죄 사건의 경우 판사의 개인적 성향과 판단에 따라 유무죄와 형량의 격차가 크게 갈리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에 어떤 유사강간 사건이 있었다. 50대 여자가 한의원에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치료 도중 치료자가 질에 손가락을 넣었다고 한다. 나는 첫 재판을 지켜보고 돌아가는 길에 검사님께 말했다. 관상을 보아하니 피고인은 유죄예요. 뭔가 음침한 게 성범죄자 느낌이 납니다, 했다. 나는 당시 그 사람의 정확한 신분을 몰랐기 때문에, 오로지 과거 경험에 입각한 촉에 근거해 그렇게 말했다. 검사님은 나를 사람 외모만 보고 죄인으로 판단하는 몹쓸 사람 취급을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사건 기록을 살펴보았더니, 피고인은 내가 겉으로 본 허름해 보이는 행색에서 떠오르는 단순 치료사 같은 직업이 아니라 한의사였는데, 심지어 병원 부원장이었다. 이렇게 가진 게 많은 사람이 굳이 폐경의 50대 여자를 유사강간해서 재판을 받는다고? 차라리 몰래 성매매를 하거나 가진 부와 명예를 이용해서 젊은 애인을 만드는 게 좀 더 현실적인 성욕 해소 루트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검사님께 다시 말했다. 직업을 보아하니 그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잃을 게 너무 많아요. 이번에 검사님은 내가 직업으로 사람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속물 취급을 했다.


재판이 거듭될수록 피해자와 피고인 측 변호인은 치열하게 의견과 자료를 제출했는데, 아주 팽팽했다. 서로가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돈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피고인에 대한 사전 친분이나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피해사실을 말하며 오열을 했다. 검사님과 나는 피고인의 유죄를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판사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에 발레 레슨을 받는데, 어느 날 연가를 내고 평일 오전 레슨에 간 적이 있다. 저녁 레슨은 요일과 무관하게 다 여자 선생님들이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수업에는 특이하게 남자 발레리노 선생님이 몸을 풀고 있었다. 발레학원에는 다 여자 수강생들밖에 없고, 차림도 아주 민망하다. 발레복 특성상 위에 속옷도 입지 않고, 흰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수영복 같은 레오타드를 입는다. 허리에 속이 비치는 시폰 스커트 한 장 정도 두를 뿐이다. 동작을 하다 보면 선생님들은 자세를 잡아주기 위해 터치를 자주 하는데, 이번 수업은 남자 선생님이니까 터치는 잘 못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발레리노 선생님은 내 옆에 딱 붙어 자세가 그게 아니라며 나를 막 다그치더니, 팬티라인 앞뒤 전체, 허벅지 안쪽을 넘나들며 주무르고, 내 엉덩이를 꾹꾹 누르고 움켜쥐었다. 힘을 더 주라느니 하면서. 만약 선생님 손에 빨간 잉크가 묻어있다면 내 성적 수치심을 자극할 법한 중심부 인근은 아주 새빨갛게 물들었을 거다.


나는 타고나게 꼬리뼈가 튀어나온 체형인데, 자꾸 엉덩이를 넣으라고 화를 내니까 위축이 됐다. 뼈를 갑자기수업시간에만 어떻게 말아 넣을 수도 없고. 선생님이 너무 단호하게 몰아붙이니까 자세를 고치기에 바빠서 그 정신없는 터치에 수치심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급기야 선생님은 내 손을 본인의 손으로 감싸 잡고 본인의 사타구니에 가져다 대면서 골반의 움직임을 느껴보라고 했다. 말하는 그 포인트가 뭔지는 알겠는데, 이렇게 미세한 속근육의 움직임까지 내가 알아야 하나? 내가 전공을 해서 세계적 콩쿠르에 나갈 것도 아니고 취미 발레인일 뿐이잖아. 하는 생각은 수업이 끝나고서야 들었다.


그렇게 다른 동작이나 진도는 전혀 나가지 않은 채, 바 앞에 서서 꼬리를 말거나 힘을 주거나 만짐만 당하다 수업이 종료가 되었고,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수강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선생님은 원래 수업 방식이 저렇게 터치가 많고 진도는 안 나가는 건가요? 하고. 원래 저 정도는 아닌데 기본자세에 집중을 하시긴 해요,라는 답을 들었다. 그 발레리노 선생님의 약력을 알아보니 세계적인 유명 발레단에 속한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 한의사도 강남 한복판 한의원의 부원장이니까 꽤나 잘 나가는 사람일 거다.


그 유사강간 사건 피해자는 처음에 그 의사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 행위가 추행인지 치료인지 긴가민가 했을 것 같다. 피고인은 피해를 당했다면 왜 제 발로 또 왔겠냐는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나도 이다음에 그 오전 레슨에 한번 더 가봤다. 그게 정말 그 사람 고유의 티칭 기법인지 내가 처음 본 수강생이라 자세를 잘 잡아주려고 그날 유독 그런 건지 본인의 욕구 충족 목적인지 확인차.


전문가의 의료행위 혹은 전문가의 지도행위 도중 수반되는 성적 부위에 대한 밀접한 접촉이, 본인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 여부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다. 그 유사강간 사건의 재판도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고, 검찰은 항소했다. 나는 그 학원에 결제해 둔 레슨 횟수가 100회도 더 남았고, 평소에 가던 시간대 여자 발레리나 선생님들이 있는 저녁 레슨을 가면 되기 때문에 그 길고 짙은 스킨십 티칭에 대해 따로 문제를 삼을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성범죄 영역은 아무리 많은 사건을 봐도 진실에 대해 단정 짓기가 참 어렵다. 무죄일 때도 찝찝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유죄일 때도 찝찝한 경우가 있다. 성범죄만의 특수성이 있다. 오직 당사자만이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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