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낸데식 운전법

뽀동이 고난의 7만 킬로미터

by Ubermensch





서른 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전엔 운전 경험이 전무했고, 학원 커리큘럼에서 하라는 대로 해본 것이 전부였으며, 합격 후 추가 연수는 돈이 없어서 받지 않았다. 따끈한 면허증을 받아 들자마자 중고차 쇼핑몰에서 뽀동이를 골라 회사로 주문했다. 내 운전 지도는 평일엔 옆자리에 앉아있던 선배님이, 주말엔 고소한 정수리 냄새의 전 남자 친구가 맡아주었다. 회사로 배달된 차는 당연히 스스로 운전해갈 수 없었으므로, 선배님이 인근 정비소에서 종합검사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줬다. 연식은 있었지만 주행거리가 2만 킬로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검사결과는 문제없었고 배터리만 교체했다.


최측근 운전 강사 두 명의 성향은 아주 달라서, 전 남자 친구는 몹시 난폭하고 거친 스타일이었고 선배님은 몹시 보수적 스타일로 극과 극이었다. 평일 퇴근길에 선배님은 생명을 걸고 내 조수석에 타서 자애롭게 운전을 알려주셨고, 전 남자 친구도 주말에 마찬가지로 생명을 걸긴 했겠지만 사납게 화를 팍팍 내면서 알려줬다. 선배님은 왜 주말만 지나고 오면 운전이 거칠어지냐고 했다. 전 남자 친구는 앞에 느리게 가는 사람이 있으면 어 뽀동이 같은 사람이네,라며 내가 평일에 익혀온 운전법을 답답해했다. 연인 사이에 절대 운전을 가르치거나 배우면 안 된다는 말은 진리다. 우리는 엄청 싸웠다.


내가 역주행을 좀 했기로서니, 너 안 되겠다며 나보고 내리라고 했다. 내 차인데 내리라니까 너무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내 운전 방식이 고약하다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도 지적을 하니까 그게 계속 큰 싸움으로 번져서, 앞으로 내게 뭔가를 지적하고 싶으면 사나운 말투 대신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하라고 타협을 봤다. 처음 몇 번은 노래를 좀 불러주는가 싶더니 다시 윽박을 질러댔고, 큰 싸움이 발발했고, 거칠고 지루한 무수한 싸움 끝에 나는 마침내 초보 딱지를 뗐다.


한 때는 왕복 100킬로미터를 하루 4-5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했다. 무려 반년 간이나. 새벽 5시에 일어나 달을 보고 출근해서 일과를 마치고 야근 후 운동까지 마치고, 역시 달을 보며 밤 11쯤에 귀가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미라클라이프를 산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운전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그 결과 온갖 종류의 과태료와 범칙금을 얻어 큰돈을 날렸다. 속도제한이나 신호위반은 물론 지정차로위반, 차선변경금지위반, 나랑 어디서 빵싸움이라도 했는지 손수 블랙박스로 제보한 신고도 당했다. 자랑은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관점을 달리 하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나라 재정에 한몫을 보탰으니 어쩌면 나는 애국을 한걸지도.


한 번은 혼자 압수영장을 집행하러 부산에서 경기도까지 5시간 동안 운전해서 다녀온 날이 있다. 너무 지쳐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뭔가를 또 잘못했다가 단속 경찰관의 부름을 받았다. 세우라는 곳에 차를 세우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심장이 콩닥거렸다.


나는 차에 있던 영장을 경찰관의 얼굴에 척 집어던지며, 난 검찰 수사관이다! 법을 집행하고 오는 길이다! 어디 감히 나를! 하며 저항하는 상상을 잠깐 해보았다가, 그 상상은 내가 공무집행 방해로 입건되는 모습에 이르렀고, 그 영장에 찍힌 집행지휘 도장 주인공인 우리 검사님의 수심 가득한 얼굴이 떠올라서, 영장이 담긴 서류봉투를 조수석 깊숙이 숨긴 채 경찰관이 요구하는 면허증을 공손한 태도로 꺼내서 보여드렸다. 그리고 마치 즉석 복권 같은 즉석 과태료 딱지를 건네받았다.


버스와 양보 없는 경쟁을 하다가 내 운전석만 찌그러지고 범퍼가 날아가고 승객들이 다 내려서 경찰이 온 적도 있었다. 나는 너무 분하고 억울했는데 보험사 말론 내 과실이 9라고 했다. 뭐 우리 회사에 끌려오는 손님들도 다 억울하다고 한다.


한때는 회사에 마치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내 차에 타보는 게 유행처럼 번져서, 운전이 가능한 하급자나 남자들이 있음에도 굳이 내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시도들이 많았다. 기어를 R에 놓고 액셀을 밟거나 사람이 내리는 중에 출발을 해버리거나 내가 내는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거나 해서 사람들이 경기를 일으키는데, 그걸 또 영웅담처럼 회사에 소문을 내고, 용감한 사람들은 또 내 차에 탄다고 하고.


뽀동이와 함께한 고난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계식 주차장 엘리베이터에 장시간 갇히기도 하고. 견인도 여러 번 당했다. 처음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서 혼잡한 퇴근길에 주변 차들이 다 피해 갈 땐 견인 기사를 보자마자 서러워 눈물이 터졌지만, 이후 대교를 건너던 도중 왜인지 모르게 본넷에서 연기가 펄펄 피어나고 매캐한 냄새가 가득 차서 갓길에 세우고 하염없이 있다가 견인 기사를 만났을 땐 적응이 돼서 견인차 조수석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해 칠 뻔한 술 취한 아저씨에게 나 대신 뽀동이가 주먹으로 맞은 적도 있다. 브레이크 밟는 걸 싫어해서 과속방지턱을 턱턱 넘어 다니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다 전봇대에 문대버리기도 하는 내 마이웨이식 운전 습관 덕분에, 뽀동이의 범퍼와 문짝은 기억이 안 날 만큼 여러 번 교체됐다.


지금도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운전해서 출퇴근을 한다. 그 시간이 따분하거나 힘들지 않다. 가난한 경기도민의 애환이긴 하지만 음악도 듣고 풍경도 보고 사람들과 차 구경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루할 틈 없이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렇다고 내가 늘 험하고 거칠고 망나니처럼 운전을 하는 건 아니다. 시원시원하다고 칭찬도 많이 받는다. 진짜다. 주차도 예술로 한다고 하고, 내 차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사람들도 많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에겐 어떤 투명 장애가 있어서 보편적 기준의 안전 운전 기준과 좀 거리가 생겼던 거였고, 그걸 인지한 이후 많이 개선됐다.


물론 최근에 내가 운전했던 후방 카메라도 없고 열쇠를 꽂아 넣는 아주 오래된, 시동을 거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관용 차량에 탑승한 제임스 요원은, 계장님 사이드 미러를 보시는 게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긴 했지만.


나와 7만 킬로를 함께 달리며, 깨지고 찌그러지고 녹슬고 때가 타서 만신창이가 된 내 수족 같은 뽀동이를 떠나보낼 날이 온다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나 타인을 상대로 유혈 사태는 없었다. 그 점이 정말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는 뽀동이를 더 조심스럽게 소중히 다루며 다니려고 한다.






나는 운전을 아주 좋아한다. 이다음에 퇴직을 하면 택시나 대리 운전기사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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