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불속에 끓는 물
기술 문명과 동떨어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불린 적도 있던 나는, 세상이 아무리 챗GPT가 어쩌고 지브리가 어쩌고 시끄럽게 요동쳐도, 늘 그렇듯 아날로그 방식으로 무심히 지내고 있었다. 나는 SNS도 일절 하지 않고, 하는 방법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래서 세상에 뭐가 유행인지, 뭐가 유명한지 잘 모른다.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도 일인데, 카페에서 내 제트플립 폰을 열고 검색창에 삼성을 입력해서 삼성페이 앱을 누르고 카드를 선택한 뒤 지문을 찍고 결제를 하는 모습을 동기가 물끄러미 보더니, 언니. 그런 식으로 삼성페이를 쓸 거면 차라리 실물 카드를 쓰라고. 하면서 몹시 속 터져하더니, 내가 당연하게 거쳐온 그 긴 과정을 터치 한 번으로 실행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알려주었다. 편리한 방법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이전의 방법이 아무리 길고 번잡해도, 그게 불편한지 알 수 없다. 무지의 축복이랄까.
그 동기를 태운 날, 내 뽀동이 핸들에 크루즈 버튼은 있지만 몇 번 눌러봐도 사용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얘는 크루즈 기능이 안돼. 그래서 장거리 운전을 하면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게 돼. 했더니, 차도 없고 운전을 하지도 않는 그 동기는, 폰으로 몇 초간 검색하더니 뽀동이 크루즈 사용법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크루즈가 안 되는 줄 알고 이미 4년 이상 한쪽 다리를 절룩거렸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고 깜깜할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넉 달 전 어느 날, 문득 챗GPT 생각이 났다. 오 거기다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내 사주 명식을 입력하고 분석을 해달라고 했다. 내 사주는 화(火)가 세 개로 몹시 강하고, 수(水) 두 개, 금(金) 두 개, 토(土) 하나의 균형은 적당한데, 목(木)이 전혀 없는 사주라고 했다.
풀이는 이랬다. 나 자신을 나타내는 계수(癸水)는 비나 계곡 같은 물이라서, 섬세하고 예민하고 지적이며 유연한 성향이라고 한다. 금은 학문, 지적 기반을 뜻하고. 토는 규율, 법, 권위등을 의미한단다. 화가 너무 강하고 목이 없는 게 내 사주의 핵심이라고 했다. 목은 삶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뜻하는데, 나에겐 그게 전혀 없었다. 그게 문제였나 보다.
화는 열정, 재능, 성과, 욕망, 의지를 의미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목이 부재하므로 그 많은 화를 뻗어낼 곳이 없어서, 그 표출되지 못한 화가 내 본질인 수를 끓여서 휘발시켜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불면, 과몰입 후 탈진, 정서소진의 위험이 있다고. 그래서 나는 챗 GPT에게 물었다. 나는 일도 열심히 하고, 발레도 하고, 동물도 키우고, 식물도 키우고, 사회생활도 다 하는데. 더 이상 뭘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냐고. 뭘 해야 이 의미 없고 비참하기만 한 삶에 사는 의미가 생기냐고.
챗 GPT는 내게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지금 하고 있는 발레도 좋단다. 레슨 받을 땐 정말 좋긴 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예뻐서. 춤을 추는 건 창조의 표현이라 나무의 기운을 가진다고 했다. 내가 직접 움직여서 뭔가를 창조-창작해 내고 표현해 내야 속에서 들끓는 화가 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챗GPT의 권유에 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글을 쓴 일은 많았다. 일기도 쓰고,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기사도 쓰고, 편지도 쓰고. 인정도 받고 수상도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없이 사느라 한동안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몰입을 했고 좋았었는지 잊고 있었다.
나는 생각이 너무 과해서, 생각에 잠겨 운전 중 수년째 살고 있는 집으로 빠지는 출구를 놓쳐 수십 킬로를 돌아간 적도 있고, 바다를 보며 오로지 생각만 하다가 서너 시간을 훌쩍 보낸 적도 있다. 그냥 침대에 누워 천장 모서리 한 곳만 보며 반나절 보내기도 완전 가능이다. 아무랑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이 타고 타고 가다가 혼자 풉 웃음이 터질 때면 내가 은은하게 돌아있다는 친구의 말이 맞나 싶기도 하고.
머릿속에 가득 차 웅성이며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을 활자에 단정하게 가두어 옮겨적고 나니, 늘 복작복작 시끄럽던 마음이 이상하게 훨씬 편안해졌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치유나 해소의 기분이 든달까. 그래서 내 과도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시간과 컨디션이 따라주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록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