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벗어나기 힘든 굴레

by Ubermensch







내가 입사하자마자 실무수습할 곳으로 처음 배정된 부서는 성폭력・가정폭력 전담 검사실이었다. 수습을 시작한 검찰청이 우리집을 관할하는 검찰청이었으므로, 동네 이웃일 지도 모를 온갖 인간쓰레기들이 우리 방을 찾아왔다.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관상으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유독 성범죄자는 특유의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눈 밑과 입술이 유독 어둡고 검푸른 보랏빛이 돈다.


당시 일에 치여 지내던 하늘 같은 대 선배 계장님은 뜻하지 않게 뿅아리 수습을 받아 몹시 기뻐하셨다. 그러곤 내게 팁이라며, 검사님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기록을 주신다고 했다. 나는 그 팁을 이용해 검사님의 눈을 계속 바라봤다. 내 눈빛에 기쁘게 응답한 검사님은 기록을 잔뜩 주셨고, 나는 그 방에서 두 달간 수습하는 기간 동안 40여 개의 사건을 받아 수사보고를 썼다. 계장님도 기뻐했다. 너는 우리 검사실의 꽃과 보석이니, 복사나 팩스 같은 하찮은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계장님의 업무를 크게 덜어갔으므로. 계장님은 내게 술과 맛있는 음식을 잔뜩 사주고, 좋아하시는 웹툰을 즐겁게 봤다.


우리 검사실에 배당되는 사건 중, 이십 대 중반 뽀시래기 수사관이던 나는 주로 비대면 전화 진술 청취 방식으로 처리하는 가정폭력 사건을 맡았고, 베테랑 계장님은 직접 불러다 조사하는 경우가 많은 성폭력 사건을 맡아 처리했다. 가정폭력범이든 성폭력범이든, 기본적으로 아동이나 여자에 대한 존중이 없는 남자가 대부분이므로, 조사를 받으러 온 피의자 중 여자에겐 무례하고 난폭한 사람이 많았다. 당시 30대 여자 검사님께 막말을 하며 대드는 모습도 봤다. 만만이 콩떡처럼 생긴 나에겐 커피를 타 달라거나 핸드폰 충전도 요구했다


기억에 남는 특이 케이스도 있다. 드물게 여자가 피의자인 상해 사건이었는데, 부부싸움을 하다 남자의 고환을 손톱으로 찢었다. 기록에 실린 사진을 보니, 나는 모를 고통이지만 어쨌든 몹시 아파 보였다. 피해자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니 처벌을 원치 않는단다. 다 풀었고 너무 사이가 좋고 사랑한단다. 기록을 뒤적여 인적사항을 봤더니 여자가 6살 연상에, 재혼에, 애도 딸렸고, 남자는 초혼의 연하남이었는데. 얼마나 여자가 팜므파탈인지 모르겠다. 몇 주 뒤에 익숙한 이름이 적힌 기록이 와서 보니 그 팜므파탈 부부였다. 이번엔 피의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채로. 가정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 확인이 필수적인 절차다. 폭행은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라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지 않으면 벌할 수 없는 까닭이다. 당장 폭행을 당할 때는 상황이 다급하고 무서우니 경찰에 신고해서 사건이 되는데, 이후 상황이 변하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여자가 피의자인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의자는 남자다. 사건 기록에는 멍이 들고 피가 흐르고 퉁퉁 부어서 슬프고 아파 보이는 여자들의 사진이 잔뜩 실려있다. 그 피해자들에게 연락해서, 검사님이 특별히 확인해 보라고 하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피의자의 음주 빈도라든지, 가정 경제 상황이라든지를 묻고 난 후 처벌 희망여부를 물으면, 의외로 대부분 희망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 그때는 홧김에 신고한 건데 지금은 화해하고 잘 지내서요, 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처벌받으면 더 때릴까 봐요. 벌금이라도 나오면 안 그래도 우리 집은 돈이 없는데 더 힘들어질까 봐요. 이런 답이 대부분이다.


사실 가정폭력의 정도가 징역을 살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흔치 않아서, 벌금형정도 구형할 수준의 폭행이 대다수다. 사건기록에 적혀 있는 인적사항을 보면 대부분의 피해자는 직업이 없다. 피의자의 직업도 없거나, 배달・현장일 같은 단순노동이나 사회 하층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다. 사실 가정 불화는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벌금이 부과되면 그 가정은 더욱 빈곤해지고, 그러면 가정불화가 더욱 심해지고, 그러면 폭력이 발생하고, 악순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오히려 피해자도 속해 있는 가정까지 나락에 빠트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검찰청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서 사회봉사라든지 교육조건부 기소유예같은 비금전적인 처분을 고려하지만, 그런 처분이 실질적으로 그 가정의 생존과 평화에 도움이 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통화를 하면서 이것저것 묻다 보면 대답을 하다 흐느끼는 피해자도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사람하고 왜 계속 같이 사세요. 이혼을 하면 안 되나요. 하면, 아이들도 있는데 제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요. 마음이야 당장 갈라서고 싶지만 저 혼자 애들을 키울 수가 없어요, 한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남편의 폭력이 이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 함께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취집을 잘했다며 팔자가 폈다고 안심하는 여자들이 있다. 내 생각엔 여자도 최소한의 경제적인 능력을 갖춰야 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 권리를 찾아 박차고 나올 수 있을 만큼은 준비가 된 상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굴레에 갇히고 만다. 그 사이에 자녀까지 있다면 더욱 비극적인 굴레에 여럿이 갇히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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