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보다 텍스트 소통이 편안한 이유
말로 하는 소통이 편안한 사람과 문자로 하는 소통이 편안한 사람이 따로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외향적 성격과 내향적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타는지 여부의 차이일 수도 있고. 이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무엇에 더 능한가, 혹은 어떤 방식을 더 선호하는가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나는 명백하게 후자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생각이 많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주 짧은 시간에 비선형적으로 확장해서 치고 나간다. 그 생각을 거쳐 나온 어떤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이해를 못 하겠어. 왜 그렇게 생각이 튀는 거야?라고 당황하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모르는 번호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전화가 올 때도 나는 잘 받지 않는다. 준비되지 못한 채 즉시 반응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발화란, 독백을 제외하고서는 필연적으로 대화 상대방을 전제하고, 그렇기에 동시성과 현재성을 지닌다. 그래서 충분한 설명과 해석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한, 나도 모르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선을 넘어서는 반응을 하면, 대화 참여자 중 누군가는 당황하게 된다. 나는 주로 당황을 시키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텍스트 방식의 대화를 선호한다. 상대방의 말의 의도를 분석하고,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으며, 널뛰는 사고를 정돈해서 일반화시키고 정제된 답변을 만들어 낼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점도 있다. 발화된 말들은 즉각적이므로 가볍고 그래서 무의미한 부분이 많고 휘발되기 쉬운데, 메신저든 문자 메시지든 텍스트로 남긴 대화는 여러 번 곱씹기가 가능하기에 한번 본 순간 느끼지 못한 숨겨진 메시지를 추후에라도 알 수 있다. 여운도 느낄 수 있다. 당시에는 몰랐던 화자의 의도와 행간의 맥을 여러 번 읽으면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자극적인 말도, 대면했다면 순간의 감정에 좌우되어 숨기지 못하고 드러났을 표정과 제스처, 정제하지 못하고 터져나간 표현으로 결국 후회될 말들이, 텍스트로 수신한다면 차분하게 대처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활자로 남긴다. 침묵과 시선으로 넘기며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들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마음과, 외면했던 감정과, 너무 많아 감당하지 못했던 생각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