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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의 삶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예쁜 건 아닌

by Ubermensch



이 글은 주취 중에 쓴다.

그렇기에 쓸 수 있는 뻔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실로 객관적으로 내가 정말 엄청나게 예뻤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어야 맞다. 그렇지만 예쁜 여자의 삶이 어떤 건지 그 인근 언저리 정도는 알기 때문에 써 본다.



어쨌거나 유치원생 때부터 서른 중반인 지금까지 매 해 꽤나 많은 남자들의 고백을 받고, 이기적이며 제멋대로이고 재수 없는 성격을 유지할 수 있고, 한평생 어떤 특권 아닌 특권을 누려왔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여중 여고를 졸업했지만 남초 대학을 졸업하고 남초 직장에 다닌 영향도 있는 듯하다. 리액션도 없고 내향적이고 쌀쌀맞은 성격임에도 주변에 남자가 많았고, 남자친구를 만나 가족을 소개했을 때, 얘를 뭐가 좋아서 만나니, 하는 엄마의 물음에 내 지난 남자친구들은 한결같이 예뻐서요.라고 대답했다. 성격은? 하고 물으면 그건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거라고 대답했고, 내 남동생은 우리 누나를 1년 이상 만나면 일단 보살인 거다. 인성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연인에게 절대 이거 해줘, 이거 사줘. 이런 류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표현해 줘. 연락해 줘. 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직접 요구해서 받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애정에 관해서는 굳이 언어로 확인받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항상 넘치게 받는 연애를 해왔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자기애가 강하다고, 이기적이라고, 나르시시즘이라고, 소시오패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보이는 것에 안도할 때가 있다. 불안을 들키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구걸하거나 확인받아서 약해 보이는 모습보다는 세 보이거나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어리고 예쁜 건 권력이지만 그게 찰나이고 결코 주체적일 수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항상 겁이 났다. 그래서 마음을 다 주지 못했고, 상대방은 내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 나는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그걸 다 표현하면 관계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들었다. 상대에게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건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나 갑의 위치에 있고자 하는 권력관계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리고 예쁜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찬란함은 그걸 반사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한 때에서 비롯된다. 화려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삶 절정의 이면에는 우울과 불안이 숨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빛나는 시절은 찰나이고 그 이후 박탈감은 그만큼 빛나본 적 없던 사람들이 알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실과 절망일 테니까 말이다.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게 그런 이유일 거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때에 맞춰 가정을 꾸리고 나라는 존재에서 내 자식에게로, 내가 사랑을 받는 객체에서 사랑을 주는 주체로 본인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것 같다. 서른 중반까지도 남들처럼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어서 그 과도기에 있는 나는 아직 혼란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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