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것들과 범죄의 상관관계

환경이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까

by Ubermensch






오늘 옆방 계장님이 구속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를 했다. 우리 부서는 평검사가 없고 부장검사들로 구성된 곳이어서, 일반적인 검사실과 달리 부장님은 집무실에 따로 계시고, 그 부장검사님에 각각 딸려있는 독립된 계장 둘이서 하나의 사무실을 공유하는 형태로 근무한다. 그래서 옆방 부장님네 계장님과, 우리 두 부장실의 업무를 겸해 맡는 실무관님, 그리고 나 이렇게 총 셋이 근무하고 있어서, 우리는 여자 셋이 사이좋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낸다.


옆방 부장님과 달리 우리 부장님은 혼자 계시는 게 심심하신지, 하루에 스무 번쯤 나를 찾아오시긴 하지만. 내 프린터 용지도 손수 갈아주시고 비타민도 나누어주시고 이것저것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나는 상사와 근무환경에 아주 만족하며 지내는 중이다. 부장님이 자꾸 오늘 내일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시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사무실의 구조 덕에 옆방 부장님 방 사건 피의자는 오늘 내 시야 앞에서 조사를 받았다. 나는 내일 정신분열증 인격장애 할아버지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베테랑 계장님이 조사하시는 현장을 지켜보는 건 아주 유익한 학습 기회였으므로, 귀를 쫑긋 세우고 유심히 보고 들었다. 운전면허를 따본 적이 없는데, 차를 아주 많이 훔쳐서 아주 여러 곳을 아주 장거리 다닌 죄로 구속된 애였다. 아주 용감한 청년이다. 순순히 자백도 한다. 왜 차를 훔쳤냐니까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 차가 보였단다. 빨리 재판을 받으러 가고 싶었나 보다.


ADHD가 있어서 약을 복용 중이라고 했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계장님의 질문에, 부모님이 중학교 때 이혼을 하시고..로 시작된 슬픈 가정사를 말했다. 그리고 절대 여주교도소만큼은 가기 싫다고 했다. 거긴 너무 힘들고, 거기만 아니면 다른 교도소는 괜찮다고 한다. 여주교도소 생활이 굉장히 힘들었던 듯했다.


그 피의자는 살면서 조사를 거의 백 번 가까이 받고 수십 건의 전과가 있는데도, 아이스크림 수십 개를 훔쳐서 징역을 살았던 일만큼은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가 항소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아이스크림은 건은 정말 억울해서 항소를 했다고 했다. 계장님은 아이스크림을 훔치지 않았다는 걸 믿어주기로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정말 억울해 보였다.


조사를 마치고 계장님은 내게 와서, 결손가정에서 어렵게 컸던 게 저 애를 범죄자로 만든 것 같다며 안쓰럽다고 했다. 나는 별 의견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네, 했다. 물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경이거나, 부모님 두 분이 완벽하게 자녀를 양육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났거나, 이런저런 정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보다 더 클 수 있겠다는 사실에는 나도 동감한다. 실제 사건 기록을 봐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불우한 성장 환경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관리 감독해 줄 부모의 역할이 부재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일탈의 유혹이나 기회도 많고, 자포자기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분노도 크고, 정신적 이슈로 행동에 대한 윤리적 조절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도 일정 부분 저런 조건을 가진 채 자라난 아이로서, 살면서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저런 류의 사회적 편견을 불쑥불쑥 접하게 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학급 임원으로서 칭찬만 받다가도, 부모님이 따로 산다는 말을 하면 그때부터는 내 언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생겨나곤 했다. 내가 어두워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라든지, 그래서 그랬구나 같은. 그 말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재벌 집 애는 심심해서 그랬나 봐가 되고. 가난한 집 애는 그래서 그랬나 봐가 된다. 그 그래서라는 세 글자 속에는 동정도 있고, 약간의 멸시도 있고,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는 거리감도 있고.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이런저런 태도가 녹아있어서, 오늘처럼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경우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쓴맛이 남는다.


타고나는 것은, 가령 부모라든지, 집안 환경이라든지, 기질이라든지, 병 같은 건 본인이 선택을 해서 태어날 수 없는 건데도. 그걸로 한 사람의 평생을 마치 굴레나 족쇄처럼 평가하고 해석하는 잣대로 들이미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럼에도 그런 말과 시선이 종종 들리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닌, 태어나보니 안고 살아가게 된 이런저런 어떤 사정들이. 그가 저지른 죄의 변명이 되어서도, 또한 죄를 저지른 이유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내가 봄날의 햇살 같다 하고, 또 누구는 맑게 갠 하늘 같다 했다. 또 누구는 내가 어둡고 그늘져 보인다고 했다. 누구는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내가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다. 나에게는 내가 뭔가를 스스로 선택할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평가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