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를 만나는 마음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할까

by Ubermensch






본격적인 수사 참여를 할 수 있는 계장 직급을 달고 난 이후, 나는 대부분 재판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를 했으므로 피의자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재판 단계에서는 이미 충분한 조사를 거쳐 증거를 확보하고 유죄를 확신할 만큼의 수사를 마친 채로 재판에 넘기는 것이므로, 피의자는 피고인의 신분으로 진화하는 까닭이다. 이 부서에서 만날 수 있는 피의자란 대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을 한 죄로 새롭게 인지되는 사람이다.


나는 재판부를 복수로 맡았고, 내가 두 해를 근무하는 동안 수사관과 검사의 인사이동 시기가 조금씩 차이가 나서, 나는 꽤 여러 명의 검사님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하나같이 배울 점이 많고 좋은 분들이셨다. 검사님들께 일반적으로 익숙한 계장의 이미지라 하면, 머리숱이 적고 배가 나온 수십 년 경험이 쌓인 중년의 아저씨 계장님 그림이다. 나는 젊고, 경험 대신 열정이 있는, 삐약삐약 아기 계장이었으므로, 나와 함께했던 검사님들은 나를 옆에 끼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내가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 시간과 공을 들여 여러 가르침을 주셨다. 이 모습을 지켜본 같은 부서의 어떤 수사관은 내가 검사님들의 애착 인형 같다고 했다.

인지 사건이 생기면, 사건에 참여할 계장들의 순번표가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나는 자원해서 여러 건을 맡았다. 순수하게 내가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유능한 검사님들 밑에서 배울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경험해 두어야, 이다음에 내가 다른 곳에 가서 본격적인 수사를 할 때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욕심을 부렸다. 짬이 더 높아진 채로 수사부서에 가면 편하게 물어보기도 부끄러울 테니까. 당시의 백지 상황으로서는 검사님들도 나에게 기대할 바가 없을 테니 무지를 뽐내며 마음 편히 물어볼 수 있었고, 검사님들도 마치 유치원생에게 한글을 알려주듯 수사란 무엇인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몇 년 전, 억대 사기를 친 것도 모자라 위증까지 한 피의자를 불러 조사를 하게 됐다. 이미 압수영장까지 받아놓아서, 검사님이 조사를 마치면 나는 옆에 앉아있다가 근엄하게 영장을 내밀며 폰을 압수하고 차량까지 수색하러 가야 할 막중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10년 전 수습 시절에 조사를 몇 번 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앞에 옆에 검사님과 계장님이 메신저로 나를 아바타처럼 조종해 주셨고, 수습 신분이라는 안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전날에는 선배님들이 내 첫 조사를 응원해 주기 위해 술자리를 마련해 놓고, 나를 강간범이라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해 보아라. 하며 예행연습까지 시켜주셨다. 나는 그 막중한 조사 일정 일주일 전부터 설레서 난리가 났다. 어떤 코디를 하고 어떤 화장을 할지 끙끙 앓으며.


그 막중한 임무를 맡은 조사 당일이 되었다. 기본 표정은 늘 언짢아 보이지만, 사실은 즐거운 기분이라는 검사님이, 그렇게 고민을 하더니 이 착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날 남색 블라우스에 남색 슬랙스에 검은색 하이힐을 선택했다. 오늘의 착장 선택 이유는 이렇습니다. 치마 대신 바지를 선택한 이유는 피의자에게 제 여성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옷 색상이 남색인 이유는 검찰의 위엄을 상징하는 색을 고른 거죠. 압수수색도 해야 하니 세 보이고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종종 조사 일정이 생길 때마다 나는 한참 전부터 의상과 메이크업 고민에 빠진다. 당일날 출근하면 선량한 회사 사람들에게, 오늘 컨셉은 차가운 도시 여자 수사관인데 그렇게 보이는지 의견을 묻고 다닌다. 사람들은, 합격입니다. 차가운 도시 여자 수사관처럼 보여요. 하며 호응을 해준다. 그럼 나는 흡족해한다. 아이라인도 좀 올려 그리고, 입술도 평소보다 짙게 바른다. 검사님은 그런 게 쓸데없다고 한다.


정작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내 차림의 97.6퍼센트 정도는 운동복이다. 나는 연애를 쉽게 시작하지 않지만, 한번 시작하면 장기 연애를 한다. 그래서 아주 편한 차림으로 만난다. 물론 무슨 거적때기를 걸치든 내 핫바디는 뭐든지 훌륭하게 소화해내기도 하고. 나는 분명 과묵한 상남자 스타일이 좋아서 연애를 시작하는데, 나랑 만나면 그 과묵한 상남자들은 커다란 댕댕이로 돌변해서 나에게 몹시 귀찮게 군다.


그래서 어느 날엔 스컹크 작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고소한 정수리 냄새의 전 남자친구가 자꾸 들러붙길래, 나는 이제 지저분해지기로 마음먹었어. 하고 선언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씻지 않았다. 얼굴에 기름이 줄줄 흐르고 머리는 떡이 져 갈라지고, 내 몸에서는 우리 회사에 잡혀오는 손님들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났다. 고소한 정수리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좀 씻으면 안 되냐고 나에게 사정했지만 내 결심은 단호했다.


그 애는 뽀뽀를 한 두 번 정도만 하면 좋겠는데, 한 열여섯 번 정도 연달아 하며 짜증나게 하는 성향이 있다. 한 3초만 안고 있으면 될 것을, 한 26초 정도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 스컹크 작전을 지속하다가, 나도 슬슬 가렵고 찝찝하고 불쾌함이 한계에 이르러 결국 씻고 말았더니, 고소한 정수리는 감격하며 씻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름이 걷히고 뽀송해진 내 얼굴에 마구 뽀뽀를 해댔다.


내일모레 조사 일정이 있다. 그전까지는 젊고 듬직한 검사님이 옆에 앉아 나를 지켜주고 돌발상황을 통제해 주리란 기대를 한 채 안심하고 호가호위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 모시는 부장님은 기수가 검사장님보다도 높고 집무실이 따로 있기 때문에, 내가 피의자를 불러다 조사할 공간에 함께 계셔줄지 여부도 미지수다. 게다가 자꾸 건강이 오늘 내일 한다고 그러시고. 몽키 스패너로 어린애 머리통을 내리친 전적이 있는 정신분열증 인격장애 할아버지를 어떤 모습으로 마주해야 할지 몹시 고민스럽다.







흰 셔츠에 검정 슬랙스로 정했다. 모나미룩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발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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