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

꽐라가 된 코알라

by Ubermensch





이 글은 주취 중에 쓴다. 사람들은 술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혹은 그 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서, 등등의 이유로 마시지만 나는 오로지 술이 내 중추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감각이 좋아서 마신다. 이미 소방차 수십대 분량의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불고하고, 나는 소주 한잔을 마시려면 그 쓴 맛을 못 이겨 숨을 참고 꼴깍 삼킨다. 나는 술을 맛 말고 오로지 취하는 용도로만 마신다.


강원도 땅부잣집의 사대독자이던가, 오대 독자이던 우리 할아버지는, 오대 독자이던가 육 대 독자이던 우리 아빠가 사람 구실을 못한 채 본인이 스스로 꾸린 가정을 망가트려서, 그 망가진 가정의 첫 결실인 내 손을 꼭 잡고, 니 애비가 저래서 내가 미안하다. 니는 내가 책임질 끼다. 하며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현금을 내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어린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해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왠지 눈물이 자꾸 났다.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어 쓰러진 이후, 건강이 악화되셨는데, 어느 날 서울에 살던 내가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찾아가 할아버지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했더니 소주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명료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담배도 사다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도수가 높은 빨간 뚜껑의 제수용, 담금 용도로 제작된 아주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소주와, 할아버지가 피우시는 담배 한 보루를 사다 드렸고, 할아버지는 나를 기특해하며 함박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돌아간 이후 몇 달 뒤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던 중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펑펑 났다. 성인이 되어 돈을 벌고, 미처 그럴싸한 선물을 드린 적도 없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드린 게 고작 술과 담배라는 게, 너무 후레자식 같아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따뜻한 스웨터라든지, 안마 의자 같은 거라도 사 드릴걸. 더 오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그 집안에서 내가 뭔가 주는 것보단 받는 게 당연한 아기 공주의 역할이 익숙했고. 그 세계가 그렇게 일찍 끝날 줄 예상하지 못했다. 나보다 더 후레자식인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딱 일 년 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보통은 회사에서 직원의 조부모상까지는 챙기지 않는 게 일반적이고, 게다가 장례식장이 꽤나 먼 지방이었는데도, 당시 우리 과장님과 주무 사무관님과 직원들은 내가 부선망 장손이라 그랬는지, 그 먼 거리에도 조문을 와주셨다.


나는 내 성을 좋아한다. 흔치 않은 성인데, 으뜸이라는 뜻의 한자여서 스스로 나는 으뜸이고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 물론 내가 부족한 부분도 많고 약한 면도 많지만, 조금 의기소침해지는 시기가 올 때면, 할아버지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미안해하며 내 손을 잡아주던 그 거친 손의 단단한 악력을 생각한다. 니는 우리 집안 사람이다. 우리 집안은 영리해. 내가 니를 책임 진다. 걱정하지 마라. 하던 그 말을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할아버지가 끝까지 나를 책임져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내가 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됐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된 이유는, 할아버지가 내 고사리 손을 잡고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사랑과 표현이 넘치는 집이 아니다. 술의 힘을 빌어야 가끔 징그러운 감정 표현을 한다. 나랑 내 남동생은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어서, 나는 내 동생이 어느 대학에 갔는지, 무슨 전공인지, 군대를 언제 어느 지역으로 다녀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날 술에 취해, 어릴 때 동생이 누나 같이 가, 하며 내 손을 잡는 걸 놓아버린 게.내내 미안하고 마음에 걸려서. 그때 미안했어, 하며 이리 와봐 하고 한번 안아주었다. 다음날 술이 깨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기억이 나서. 동생을 폭 안아주었던 내 양손을 그대로 들어 내 목을 조르고 세상을 떠나버리고 싶어졌다.


술이라는 게 약인지 독인지 알 수 없다. 끊긴 끊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