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가요 손이 가
어느 날 회사에서 나를 쭉 지켜보던 누군가 내게 말했다. 수사관님은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 같아요. 나는 조금 발끈하긴 했지만 사실은 맞는 말이다. 이 생활 능력은 돈을 버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학업이나 지적 능력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꾸려나가는 능력을 뜻한다. 내가 속해있는 환경- 가령 집이라든지, 사무실 책상이라든지, 자동차라든지- 를 말끔하게 유지하는 능력이라거나, 쓸데없이 부딪히거나 쏟거나 엎지르거나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다닌다든지, 몇 번 다녀본 길을 잘 찾아간다든지 등등.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하게 갖추고 있는 그런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능력을 말한다.
우리 집은 아주 오래된 구축 아파트라서, 몇 년 전 이사하면서 화이트 톤으로 아주 말끔하게 리모델링을 했다. 중문을 터서 아치형 곡선으로 예쁘게 장식하고, 바닥은 하얀 대리석이면 좋겠지만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하얀 대리석 느낌이 나는 장판을 깔고, 화장실과 싱크대도 새로 맞추고, 현관 타일과 붙박이장까지 내가 하나하나 색조를 고르고 인치를 정하고 디자인을 해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다들 감탄할 만큼 예쁘게 꾸몄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집상태는 쓰레기집 주제 다큐멘터리 취재를 와도 될 정도다. 내 얼굴에 모자이크를 해주고 음성변조만 해준다면 촬영과 인터뷰에 응할 의향이 있다.
고양이 두 마리와 나는 누가 더 할 것도 없이 경쟁적으로 집을 어지른다. 고양이들은 털을 뿜고 나는 내 긴 머리카락을 뿜는다. 로봇 청소기와 엄마가 사준 일렉트로룩스 청소기가 다 고장나버리는 바람에 청소기를 돌리지 못한 지 몇 주가 됐다. 고양이들도 자기 밥그릇과 물그릇을 엎어버리고. 나도 내가 먹던 배달 용기를 실수로 쳐서 엎어버린다. 바닥이 난장판인데, 생활 능력이 없는 나는 그걸 바로 치우지 못하고, 그냥 두면 수분이 증발할 거고, 그러면 오염물의 부피가 줄어들 테니까. 그때 치우면 좀 더 간편하지 않을까? 하며 그냥 둔다. 그리고 고양이들과 나는 깡총깡총 서로가 엎지른 오염물을 피해 다닌다. 냉장고는 왜인지 진물을 흘려서 하얀 대리석처럼 보이는 하얀 장판을 물들이고 있다.
입사 초 어떤 선배는 내가 새우깡 같은 애라고 했다. 왜 제가 새우깡인가요 하고 물으니, 예전 새우깡 CF에서 로고송이,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라는 게 있었다. 하도 내가 사고를 치고 다녀서 자꾸 손이 가기 때문에 새우깡이라는 거다. 또 전에 부서 회식으로 뷔페에 갔을 때는, 사수 계장님이 본인이 음식을 떠 오는 동안 혼자 있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계장님, 제가 나이가 서른 살이 넘었는데, 그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겠나요. 다녀오십시오 했더니, 그래. 물가에 내놓은 유치원생처럼 보여서 그런다. 아주 불안해 죽겠다며 윽박을 지른다.
물론 내가 기록을 수레에 싣다가 고무줄을 날려서 스스로 맞기도 하고, 걸핏하면 어디 걸리거나 부딪히고, 음식이나 음료를 엎지르기도 하고, 뭐 그런 류의 일들이 일상이기는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들 나를 타박하고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 누가 챙겨달라고 하거나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실용성이나 기능성은 거의 없고 오로지 관상용 점수만 높은 내 손의 악력이 약하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버리면 주변 지형지물을 블러 처리해 버리는 습성 때문도 있는 듯하다. 몇 년 간 사람들과 수십 번을 방문한 음식점도 혼자 가라면 못 간다. 그 경로가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남을 법한데도 안 남는다. 나도 신기하다. 어쩌면 이렇게 생활 능력이 없을 수가 있는지.
그래서 사는 게 참 고난이도다. 내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집 안도 위험하고, 집 밖도 위험하다. 장애물에 부딪히고 걸려 넘어져 상처가 끊이지 않고, 집은 점점 말도 안 되게 지저분해진다. 방에는 옷으로 된 산들이 생겼고, 내 침대는 산속에 있으므로, 나는 매일 산속에서 자는 셈이다. 마치 도를 닦는 사람 같다. 아침엔 두더지처럼 산을 헤집어 옷을 찾아 입는다. 그러고 보니 게으름과 인내심이 강한 것도 내 생활 능력 없음의 원인으로 꼽아 볼 수 있겠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정도 지경에 이른다면 좀 달리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들 법도 한데, 선뜻 실행으로 이어가지 않고 꾹 참아내기 때문이다.
나는 가진 장점이 많기 때문에, 생활능력 정도는 좀 없는 게 인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 치명적이라서 내가 봐도 좀 깝깝하고 답이 없긴 하다. 내가 이다음에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나 대신 생활 능력이 좋은 남편을 만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