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해"

by Ubermensch






"Tu deviens responsable pour toujours de ce que tu as apprivoisé."



모든 어른들도 한때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생텍쥐페리가 1943년도에 발표한 소설 어린 왕자는 모든 문장이 시(詩)이고, 철학이고, 삶의 지침이어서. 한번 본 영화나 책을 절대 다시 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몇 번이고 재독하는 작품이다. 몸이 오염되면 바디 워시로 거품을 내고 문질러 씻어내면 된다. 마음이 세상 물정에 찌들어서, 비틀어 짜면 구정물이 쏟아질 것 같은 때가 오면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찾는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다시 볼 때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가 새롭게 와닿는 까닭이다.


놀이동산 퍼레이드 행진곡에 섞인 별가루 부서지는 소리에 두근대던,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뛰놀던 동심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다.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한줌 허리 사이즈를 가진 용감한 디즈니 공주님에 열광하고, 미키마우스 인형을 끌어안고 텔레비전 속 만화 영화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하던 철없는 어린 시절 순수의 세계는 너무나 찰나여서 아름다웠다.


어린 왕자의 모든 구절과 페이지가 명문이지만, 내 사유가 유독 멈추었던 곳은 어린 왕자와 장미, 여우와의 관계 부분이었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허영이 많고 자존심이 세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사랑의 대상인 어린왕자를 향해 가시를 세운다. 십 대 시절 나는 내가 어린 왕자 속 장미와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불완전하고 겁이 많고 자존심만 세서, 정작 소중한 것을 놓쳐버리게 된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장미를 두고 다른 행성을 여행하던 어린 왕자는 본인이 아끼고 사랑을 쏟던, 세상에 유일한 줄 알았던 장미가 지구에 흔하게 널려 있음을 알게 된다. 여우는 충격을 받은 어린 왕자에게 그럼에도 그 장미가 고유하게 특별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준다. 비록 세상에 비슷한 장미가 수도 없이 많을지라도, 어린 왕자의 행성에 있던 장미가 유일하고도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네가 시간을 쏟아 그 장미를 길들였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그 장미에 대한 책임이 생기는 거라고. 결국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에게 돌아간다.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이 전부인 장미를 보살펴주기 위해.


관계란 그런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애착, 주고받은 상처, 공유한 시간 속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서로를 길들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동반하게 된다. 길들임의 과정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책임이 있기에 관계는 서로에게 유일해지고 특별해진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2011년도, 2016년도에 데려왔다.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화장실 배변을 잘 가려야 하는게 정상임에도. 한 마리는 세면대에 오줌을 싸고, 바닥에 똥을 싼다. 다른 한 마리는 비닐을 씹어먹고 내 옷가지나 소파 위에 토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둘 다 덩치는 산만한데 털 뿜는 공장이나 다름없어서 함께 살아온 십수 년간 내 삶의 질이 아주 저하됐다. 분명한 고의로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앞발로 쳐 깨부수거나, 음식을 엎지르는 모습도 똑똑히 본다. 울화가 치밀어서 현관문을 열고 쫓아내며 앞으론 길고양이로 살라고 고함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럼에도 나는 꾹 참는다. 엄마 젖을 갓 떼고 왔던 아기고양이 시절부터 노령묘가 된 지금까지, 내가 시간을 쏟아 밥을 먹이고, 똥오줌을 치우고, 곁을 파고들 때 쓰다듬어 주면서, 나는 우리 집 고양이들에 대한 책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길들인 존재들이므로, 울화가 치밀어도 끝까지 책임지기로 한다.

keyword
Ubermensch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172
이전 01화신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