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죄

태초부터 비롯된 죄

by Ubermensch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원죄라 함은, 성경의 창세기 3장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신의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 에덴에서 추방되어 죽음과 고통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이로써 모든 인간은 본래적 의로움을 잃고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개념일 것이다.


나의 원죄는 이 그리스도적 원죄와 무관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그 결실로 갓 태어난 생명을 나자마자 죄인으로 치부하는 관점도 개인적으로 썩 내키지 않는다. 나는 맹자의 선한 씨앗을 지닌 존재로서의 성선설(性善說)이나, 순자의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로서의 성악설(性惡說)보다는, 고자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지지하는 편이다.


뇌의 구성이나 기능이 남다른 사이코패스 일부를 제외한다면 나는 사람이 특별히 악하지도, 마냥 선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다층적이고도 입체적인 존재이므로, 본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선한 면도 악한 면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이 기독교적 관점을 관두고 나의 원죄로 돌아가자면, 그건 우리 외할아버지 관점에서 내가 타고난 원죄다. 순하고 착한 둘째 딸을 특전사 출신이라는 허우대 멀쩡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던 부잣집 자식에게 시집보내 놨더니,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벌인 사업에 연달아 실패하고 폐인이 되어 가정을 망친 사위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내게로 왔다.


나는 신혼 때까지만 해도 꿀이 뚝뚝 흐르던 엄마아빠의 허니문 베이비였다. 보통은 내가 애처럼 굴고 제멋대로에 새침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게 외동이거나 오빠가 있냐고 주로 묻지만, 친가에서나 외가에서나 나는 첫 손주다.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책임감도 강하고 어른스러운 맏이 중 맏이의 면모가 있다. 알아주는 사람은 딱히 없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다.

친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공주님으로 불렸던 것과 달리, 외가에서 나는 이름을 제외하곤 주로 지시 대명사로 불렸다. '이것' 혹은 '저것'. 때로는 인칭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년' 혹은 '저년'. 인칭 대명사 앞에 붙는 수식어는 주로 '싸가지 없는', '죽일' 뭐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니 엄마가 새로 시집가서 편하게 살 텐데. 지 엄마 등골 빨아먹는 년,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려야 하는데, 고아원에 갖다 버려라, 택배에 싸서 지 아빠한테 보내버려라. 등등.


불행히도 미성년자 시기의 대부분을 친가가 아닌 외가에서 자랐으므로 저런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고, 그러다보니 내 성격은 몹시 난폭해졌다. 어쩌면 타고난 본성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다 느닷없이 저런 말을 들으면 젓가락을 내던져버렸고, 물건을 부수며 소리를 빽빽 지르고, 가출을 했고, 엄마는 자주 울고. 집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이기적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인간이 안 되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며. 내가 먹는 것도 아깝고 엄마가 책 한 권 사주는 것도 아까워했다. 나는 아동학대 신고를 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112 번호를 여러 차례 눌렀지만, 그러면 아동 보호 시설에 갈 수도 있고, 그곳은 공부를 제대로 하기 힘든 환경일 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늦은 시간에 집을 뛰쳐나와서 어느 건물 계단에 앉아있자니, 징그러운 아저씨가 어디 갈 곳이 없니? 나 따라 올래? 하는데, 그 아저씨를 따라가서 펼쳐질 인생이 어떨지 어린 나이에도 잘 알겠어서,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으므로,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엄마 아빠는 똑바로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나를 낳았냐고. 낳아놓기만 하면 다냐고. 나는 나중에 커서 술집 여자가 돼서 몸이나 팔면서 살겠다고. 엄마는 울었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책을 폈다. 사실 술집 여자가 돼서 몸이나 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엄마네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를 엄마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나를 보호하지 않고 방관하는 엄마가 미웠다.


당시 환경이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어쨌거나 지붕과 벽과 보호자가 필요했고, 과거와 현재는 어린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더라도, 이 거지 같은 상황을 꾹 참고 열심히 살면 적어도 미래는 바꿀 수 있겠지, 하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나는 일찍 독립했다. 집도 서울이고 대학도 서울이었지만 외가 식구들이 지긋지긋해서 스물 한살에 무리해서 독립했다. 그리고 얼마 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 가서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잘됐네요. 지옥에나 가세요, 하고.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만큼 극단적으로 나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진 않았지만 나를 대했던 전반적 태도는 비슷했다.


내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 자랑할 만한 직장에 다니고, 더 이상 대들거나 소리를 지를 상황에 처하지 않자 외할머니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더 나아가 내가 집에 갈 때마다 나를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한다.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전화도 자꾸 한다.


최근까지도 외가에서 자란 그 시절이 종종 꿈에 나올 때가 있다. 너무 서럽고 억울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서 깬다. 무의식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나는 그들을 진작에 용서했다. 미워하는 게 나를 더 갉아먹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외할머니가 나를 껴안으면, 비록 어색하게 로봇처럼 움직이긴 하지만 할머니를 안아주며 나도 사랑해, 하고 대답한다.


얼마 전 외할머니가 갑자기 나한테 많이 미안했다고, 10년 간 자식 손주들이 준 용돈을 모아 내가 이사할 때 보태 쓰라며 종잣돈을 건넸다. 나는, 할머니 이제 다 늙고 죽을 것 같으니까 참회해서 지옥 안 가려고 그러지? 했지만. 할머니도 내가 진작 용서한 걸 안다. 죽은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저주를 퍼붓던 마음보다, 그냥 털어버리고 웃어버린 마음이 훨씬 편안하다.

keyword
Ubermensch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173
이전 02화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