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t ist tot - 광인의 비유
우리 집안은 신을 믿는 구성원이 많다. 우리 외가 쪽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친가 쪽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많다. 가족 중 목사님도 있다. 대부분의 가족이 세례를 받고 세례명도 있다. 나는 모태신앙이어서, 주말이면 가족들을 따라 성당을 10년간 다녔다. 스스로 고집해서 정했던 내 세례명은 엘리사벳이다. 성탄절 무렵에는 코에 깜찍한 빨강 폼폼이를 붙이고 루돌프 사슴코 공연을 했고, 성가대 단원으로 하얀 미사보를 쓰고 매주 미사 때마다 성가를 불렀다. 필요할 땐 가끔 건반 연주도 했다.
미사 진행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엔 무릎을 꿇고, 한 주간 잘못한 일에 대해 고해 성사도 하고, 양 손을 모아 '평화를 빕니다.' 하는 시간에는 양 옆 사람에게 진심으로 평화를 빌어줬다. 두꺼운 구약-신약 성서도 수도 없이 읽고, 청소년 교리 모임도 수년동안 참석해 보고. 성당에서 10년 이상 하라는 건 다 했지만, 독실했던 가족들의 바람과 달리 끝끝내 내 마음속에는 신앙이 자리잡지 않았다.
외모는 안 그렇게 보이겠지만 나는 사실 과학 영재 출신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 있어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자면, 그리고 기독교에서 '불신지옥' 구호를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 머릿속엔 이런저런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굶어 죽는 선량한 사람들은 종교고 나발이고 당장 하루하루 사는 게 문제인데, 신을 알 기회조차 없었다는 이유로 지옥불에 떨어져야 하는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성모마리아나 예수님이나 하느님 상을 보면 왜 전형적인 멋진 비율에 하얀 피부에 빼어난 외모를 하고 있는지, 이 서구 종교에는 어떤 외모지상주의나 인종차별적 요소도 포함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회장 선거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제가 회장에 당선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는데, 몇 표 차로 회장에서 낙선하고 부회장이 되자 기도의 무용성을 깨닫고 되바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좀 더 자라고 나서는 누구-신이라든지, 절대자 포함-에게 의지하는 게 싫어졌다. 오로지 나를 믿고 살기로 결정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틈만 나면 나에게 선교를 하셨던 우리 예전 부장님은 그게 오만한 생각이라고 나를 나무라며, 인간은 모두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조금 다투어 봤는데, 절대 내가 이길 수 없는 사회적 지위에 따른 구조적 입장과 하염없이 길어지는 대화에 지쳐 결국 예, 알겠습니다.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125절 「광인의 비유」에서, 한 미치광이-니체 자신으로 해석될-가 등불을 들고 시장에 뛰어들어와 "신은 죽었다(Gott ist tot)"고 외친 장면은, 단순한 무신론적 선언이 아니다. 니체는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로 흔히 오해받곤 하는데, 나는 사실 그 반대에 더 가깝게 봤고, 그렇기에 니체의 철학에 빠졌다. 니체가 바라본 세상은 불합리하고 엉망진창이고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도 그렇다.
19세기말 이전까지는 기독교적 가치 체계가 사람들을 지탱해 왔지만, 새로운 문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신의 절대적 위상과 전통적 질서가 붕괴됐다. 니체의 사상이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삶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는, 그 폐허에서 자립해내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본다. 나는 광인의 이 맑고 투명한 시선에 감탄했다. 세상은 아름다워, 신이 우리를 굽어살펴줄 거야. 착하게 살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하는 식의 낙관주의도 아니고, 어차피 뭣 같은 세상 대충 막 살다 가버리자, 하는 비관주의도 아니다.
니체는 '초인(Ubermensch)',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같은 개념을 고통으로 얼룩진 삶의 허무에 채워 넣을 것으로 제시해 준다. 엉망인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오. 이런 뭐 같은 삶? 그럼에도 나는 수용한다.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기꺼이 또 한 번 살아주지. 하는 식이다. 그 태도가 너무 멋져서, 초롱초롱한 스무 살 새내기였던 나는 앞으로 꼭 그렇게 살기로 다짐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발레 할 때 내 다리 한쪽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도 많고, 굳은 결심이 별 하찮은 일에 흔들릴 때도 많다. 그래도 나는 절대자에, 권력에, 달콤하지만 나를 상하게 하는 것들에 의지한 채 살지 않기로 정했다.
나는 오로지 나를 믿고 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