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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올라 Jan 14. 2022

인종차별

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

식당 앞 야자수가 멋져보여서 찍었던 아프리카 길거리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인종 차별을 찬성하는 발언이 아니다. 당연히 그러면 안되지만 인종 차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가 붙잡고 그건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외치기에는 변하지 않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종 차별은 없어져야 할 행위이다. 나의 '인종 차별을 이해한다'는 말은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 길거리에서 들었던 수 천 번의 중국인이다와 니하오라는 말들에 익숙해져서 이 나라에서는 이제 내가 인종 차별을 당하더라도 예전만큼 화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곳에는 현지인을 무시하고 말 그대로 천대하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다. 미국이나 서양권 국가에서 흑인 인종 차별로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여기서의 인종 차별은 별 이슈도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외국인이 현지인을 무시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지인들은 현지인을 고용하는 사람들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다.


 내가 지내는 국가 내에 한인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현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한국인이 소수라는 사실에 내가 다 부끄러웠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만난 건 아니지만 만났던 한인들 대부분이 현지인에게 썩 친절하지는 않았다. 굳이 불친절하게 대해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뭘까? 국격을 논하고 국가적인 이미지를 생각하자는 게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은 최악이었고 모두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기억을 남겨주는 게 결코 서로에게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지내다 보니 현지인들이 중국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납득이 간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현지인 직원 한 명이 여기 사람들은 아시안을 보면 전부 중국인이라고 생각해서 불친절할 수도 있다고 했었다. 중국인 사장들이 현지인들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중국어로 소리를 지르며 누가 들어도 중국어로 된 욕을 한다.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사람을 구석에 몰아넣고 소리친다. 그렇게까지 격한 감정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만난 한 한국인 사장은 매일같이 소리를 지르고 씨로 시작하는 한국어 욕을 하는데 누가 봐도 현지인들이 그게 욕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작은 실수만 해도 윽박을 지르고 손님에게 매일 현지인 직원들 욕을 하는 모습에 다시는 초대에 응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이 손님으로 찾아갔을 때마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손님으로 온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없다고 느꼈다.


 인종 차별을 당당하게 하던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지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믿으면 안 된다. 친절하게 해 주면 기어오르고 속이려고 하고 돈을 뜯어내려고 할 거라고. 정말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중국인들 중에 이 나라에 성매매 업소를 차린 사람들이 있는데, 아시아인을 성 매매하는 사람처럼 취급할 수 있으니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너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어야 한다고 했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과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를 당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신념 자체를 너무 굳게 믿고 있었고, 철옹성 같은 그 사람의 신념에 노크를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 웬만하면 현지인들을 한국인을 대할 때와 동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현지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만들어놓은 나만의 기준 안에서 나는 그렇게 행동했었다. 여기에 있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니, 현지인 직원들은 당연히 우리가 상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고 조금만 언성이 높아져도 바로 알겠다고 하고 수긍한다. 물론 나에게도 거짓말을 한 적도 있고, 속이고 돈을 받아가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는 단호하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보통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정말 드물게 불쾌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한 사람들에게 불쾌하기보다는 안쓰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큰돈도 아니고 기껏 해봤자 20불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지내면서 인종 차별을 당하고,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면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니하오라고 하면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 가끔은 웃겨서 같이 니하오라고 대답해주고 만다. 여기 사람들 중 동양인에게 정말로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니하오를 외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끔은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에요,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번은 마트에서 어린아이와 엄마가 지나가면서 니하오라고 해서 우리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야라고 답하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한국어로는 안녕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길에서 백인이나 흑인만 보면 무조건 헬로라고 말을 걸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이 나라의 분위기나 발전 속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70-80년대를 보는 것 같다고들 하던데 몇십 년 뒤에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인종 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지 않을까?


 코로나로 인해 흑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인종 차별하는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도 똑같이 흑인들을 인종 차별을 해도 된다는 사람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그때는 그 말이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보니 저 의견은 억지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어떤 흑인에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했는 데 그 사람은 아시아인을 존중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배우지 못해서, 무지해서 인종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세상에 정말 많다. 적어도 인종 차별을 하는 게 잘못된 행위라는 걸 배웠다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한 사람의 가치관을 계몽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퇴사를 할 예정이라고 소수의 현지인 직원들에게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모든 현지인들이 너는 정말 우리한테 친절했고 너무 고마웠다는 대답을 했다. 그동안 친절하게 대한 것들을 이 사람들이 느껴줘서 다행이다, 내가 쓸모없는 친절을 베풀었던 건 아니었구나 괜히 감정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이곳을 떠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밥을 매일 같이 먹고 장을 보러 같이 가던 한국인 직원들보다 나에게 거리낌 없이 먼저 다가와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던 현지인들이 더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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