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올라 Feb 23. 2022

아프리카에서 생일파티에 초대되다

아프리카 가족의 생일파티

 친구 조카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다. 아프리카 어디에서, 누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느냐에 따라 파티의 형식은 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런 생일 파티도 있다고 소개하는 글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는 동안 지금까지 두 명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봤다. 첫 번째 생일 파티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던 성인 두 명의 합동 생일파티였고, 이번에 초대된 생일 파티는 친구의 조카(4살) 생일 파티였다. 

 첫 번째 생일 파티는 약 반년 전에 초대되었던 파티였다.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아서 불고 크게 노래를 불렀다. 생각보다 엄청 큰 파티는 아니었고 사람도 10명 내외로 모여서 생일 파티보다는 모임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한국식 바비큐와 서양식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사진을 100장은 찍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뒤에 다 같이 술을 마시러 바에 갔다. 너무 늦게 가서 금방 나오긴 했지만 밤 10시 넘어서까지 정신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재미는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이유 모를 어색함이 느껴져서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던 생일 파티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초대된 생일의 주인공은 친구네 이모집에 몇 번 놀러 갔다가 만났었던 막내 꼬마의 생일이었다. 뭘 사다 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친구네 이모집에 아이들이 많아서 아이들끼리 나눠먹으라고 과자와 선물을 사들고 찾아갔다. 낯을 가리는 꼬마라서 우리의 방문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사실 꼬마의 엄마가 초대해준 거긴 했다. 오후 6시에 케이크를 자른다고 해서 그 시간에 맞춰서 갔지만 역시나 아프리칸 타임(옛날에 한국에 코리안 타임이 있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아프리칸 타임이 존재한다. 코리안 타임은 10분 정도 늦는 거라면 아프리칸 타임은 기본 30분에서 1시간은 늦는다.)으로 오후 8시가 넘어서 케이크를 잘랐다.


 시간을 지켜서 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당연하다. 아프리칸 타임이 있으니까! 우리가 오고 나서 잠시 뒤에 꼬마의 삼촌이 집에 들어와서 인사도 하고 이야기를 했다. 그 삼촌은 삼 십분 정도가 지나자 친구들을 만나고 온다며 다시 나갔다. 그러더니 한 십 분 뒤에는 갑자기 꼬마의 다른 친척들 열 명 정도가 왔다. 아까 나갔던 삼촌은 한 시간이 지나자 다시 들어왔고, 얼마 뒤에는 꼬마의 아빠가 친구와 함께 같이 들어왔다. 일곱 시 반이 넘자 대략 스무 명 정도의 가족들이 다 모였다. 그때부터 전통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고 다 같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도 나눴다.


아프리카 생일 파티 음식

음식은 감자튀김, 빵, 도넛, 구운 닭고기, 구운 염소고기, 바나나 빵(바나나 플란텐 banana plantain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음식이다. 바나나를 썰어서 튀긴 음식인데 빵 같고 생각보다 맛있다), 맥주, 음료수, 감자칩 등이 있었다. 미리 만들어둔 음식을 사람들이 적당히 모이고 난 뒤,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덜어가서 먹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 날 저녁을 미리 먹고 가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케이크를 자르기 전까지 나는 생일 주인공인 꼬마와 사촌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줬다. 한국에서 사촌 동생들을 놀아주던 실력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여기서는 까쉬까쉬라고 부르는 숨바꼭질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가르쳐줬다. 아이들에게 몇 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알려줬더니 곧바로 똑 부러진 발음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따라 했다. 아이들의 습득력이란! 다 같이 숨바꼭질을 하다가 위험하니까 뛰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에 다 같이 모여 앉아서 미용실 놀이도 하고 과자도 먹었다.


 8시가 넘어서야 생일 케이크를 잘랐다. 여기서는 생일 축하 노래를 3번씩 부른다. 한 번은 불어로 부르고, 한 번은 여기서 사용하는 아프리카 민족어로 부르고, 한 번은 영어로 부른다. 생일 축하 노래를 세 번씩 부르다 보면 더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 순간을 영원히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을 만큼. 가족들과 함께 생일 주인공인 막내에게 다 같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초를 불자마자 다 같이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생일 당사자인 꼬마보다 꼬마의 사촌들과 더 재밌게 놀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사촌 동생들하고 놀던 기억이 떠올라서 좋았다. 아직 어린 아기의 생일이라서 그런지 큰 가족 행사 같은 느낌보다는 생일이니 겸사겸사 모여서 다 같이 얼굴도 보고 밥도 먹는 느낌이었다.

 한국처럼 생일인 아이한테 용돈을 주는 삼촌의 모습을 보고 괜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작은 아이 한 명을 위해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는 모습이 마음을 참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어느 나라를 가든, 가족이라는 존재는 비슷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헤어지기 전,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비쥬를 하고 헤어졌다. 나중에 만약에라도 아이들이 한국에 온다면 꼭 만나고 싶다. 너무 어렸을 때 만나서 나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말투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