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 D+1
혼자 여행의 좋은 점은 여유롭게 여행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여행하면 여행이 끝난 뒤에 써야하는데 그 쯤이면 기억이 거의 사라져있다. 어차피 난 쫄보라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며 놀지는 않을거니까 밤에 간략하게 여행을 정리해보기로 다짐!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이번 뉴욕 여행의 테마는 네 가지다.
1)미국 영화에서 늘 보이는 클리셰같은 미국 문화들 직접 체험해보기
2)유명한 미술/공연 작품 많이 보기
3)친구 결혼식 가서 축사도 잘 하고, 파티 재밌게 즐기고 오기
4)일하기 시작한 지 5년. 5년이라는 시간은 그래도 꽤 의미있는 숫자이기에 향후 5년 어떻게 보낼지 혼자 생각하는 시간 가지기
0.비행
출발하기 전에 장거리 비행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대학생 때는 유럽, 남미로도 장거리 비행을 잘 했었는데 나이가 조금 들었다고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몸이 안 좋기도 하고, 비행기 안에서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결국 출국 전날 병원에도 들렀다 왔다. 의사쌤이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99%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별 일 없었으니까 앞으로 2주 동안도 별 일 없을거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다행히 내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대학생 때 아프지 않던 다리와 무릎이 아파서 잠을 잘 못 잤다. 중간에 하와이를 경유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고, 멀리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워서 꼭 다시 와야지 다짐했다! 하와이 가는 길엔 기내 와이파이가 되어서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냈고, 뉴욕 가는 길엔 영화도 보고 잠도 잤다. 뉴욕이 배경인 영화들을 여러개 다운 받아갔는데, <비긴 어게인>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같이 카페 알바하던 언니가 30살이었는데, 네가 이 영화를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본인은 매우 좋았다며 추천해줘서 보러 간 기억이 난다. 그 땐 음악 좋고 스토리 재밌는데 엄청 와닿지는 않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노래만 자주 들었지 영화를 끝까지 다시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랜만에 내가 언니의 나이가 되어 영화를 보니 그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이 보여서 신기했다. 특히, 맨 마지막에 여러 일을 겪고 웃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한 뼘 더 성장한 듯한 표정이 뭔지 너무 알 것 같아서 그 땐 이해할 수 없었음이 당연했구나 생각했다.
<비긴 어게인>을 보고, <레이니 데이 인 뉴욕>까지 보고 뉴욕도착! 우디 앨런 너무 싫은데 이 영화는 뉴욕 로망 그 자체다. 내리니까 뉴욕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비가 온 영향인지 18도 정도의 날씨로 매우매우 싸늘했다. 추위를 많이 타서 기분이 안 좋아질 뻔 했지만.. 첫 날부터 이러지 않기로 다짐하며 후드를 샀다. 아침 7시에 도착했기에, 체크인 시간까지 이 추운데 뭘 하지 조금 우울했다. 근데 럭키비키.. 7시에 바로 얼리 체크인 시켜주시고 심지어 방도 무료 업그레이드해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베이글
뉴욕 베이글은 베이글 자체가 맛있어서 유명한걸까? 안에 들어가는 토핑이 다양해서 유명한걸까? 늘 궁금했다. 뉴욕 첫끼로 먹은 연어 베이글! 먹자마자 헐.. 진짜 맛있다! 라고 속으로 외쳤다. 아무래도 토핑이 다양해서 유명한 쪽이 맞는 것 같다. 베이글에 끼워먹는 염장 생선, 염장 고기들이 이민자들의 문화에서 온거라고 하니까. 바빠서 베이글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는 도시의 문화 + 다양한 민족이 섞인 식문화가 합쳐져서 유명해진 것 아니려나
2.911 메모리얼
어디가지 고민하다가 날씨가 왠지 슬퍼서(?) 911 메모리얼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악명 높은 것에 비해 별로 안 더럽고 타기도 쉬웠다. 나는 파리 지하철도 그냥 저냥 괜찮았던 사람이라 왜 다들 지하철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먹구름 가득한 날씨를 뚫고 911 메모리얼 뮤지엄도 보고, 파크도 구경했다. 비극적인 참사의 기억해야 하는 일부는 보존하는 방식으로 뮤지엄을 만든 방식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참사의 순간들을 직접 마주하고, 희생자들의 개인적인 사연과 물품들을 마주하니 굉장히 슬펐다. 각자가 기억하는 그 날의 하늘 색으로 그 날을 기억하는 전시 꾸린 것도 감동이었다. 메모리얼 파크의 추모 건축물은 방송에서 많이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멋지고 압도되고 슬픈 느낌이었다. 역시 실제로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3.서점 투어
미스터리 전문 서점, 드라마 희곡 전문 서점, 포스터 전문샵을 구경했다. 너무 좋아-! 미스터리 전문 서점은 컨셉이 뚜렷해서 좋았고, 드라마 북샵은 진짜 연기 전공하는 학생들이 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사랑받는 서점이라고 느껴졌다. 북이 하늘로 올라가는 저 디피 어떻게 한건지 넘 궁금.. 드라마 북샵은 내일 다시 또 가볼거다. 이 쯤 시차적응 때문에 너무 졸렸다.
롱블랙 레터 였나에서 브랜드 스토리를 읽고 늘 궁금했던 초바니! 키라임을 원래도 좋아해서 이 맛으로 샀는데 넘 맛있었다. ㅠ ㅠ 요거트 먹고 30분만 낮잠잔다는게 3시간을 자버려서 저녁에 일어났다.. 시차적응 어떡하지?
자고 일어났더니 맑아지고 있었던 저녁의 하늘-!
멕시코와 가까워서 타코집이 많다고 하던데, 멕시코에서 타코 먹어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나는 뉴욕에서도 타코를 많이 먹어보기로 결심했다. 타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모여있는 곳이어서 다양한 나라 음식을 많이 먹어보고 싶다. 특히, 한국에서는 내가 그리워했던 스리랑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스리랑카 음식점이 전국에 단 하나(..)밖에 없어서, 뉴욕에서 치즈 꼬뚜를 꼭 먹고 가고 싶다.
자고 일어났더니 체력이 좀 괜찮아져서 타임스퀘어 인근을 계속 걸어다녔다. 날씨도 좀 괜찮아지고, 밤의 뉴욕 풍경이 너무 예뻐서 뉴욕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타임스퀘어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봤다. 뉴욕에 사는 사람도, 이렇게 공연을 하는 사람도, 관광객들도 모두 에너지가 넘쳐보인다는 것이 뉴욕의 큰 특징인 것 같다. 공연하는 중에도 '저 사람들 에너지가 좋다'라는 말이라든지, '여러분의 에너지를 나눠주시면 저희도 돌려드릴게요!'라든지 에너지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됐다. 뭔가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도시라고 느껴진다. 뉴욕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많이 많이 받아가야지! 벌써 밤 11시 반이다. 밖에서는 총소리인지 다른 소리인지 모를 위협적인 소리가 몇 번 들려와서 살짝 무섭기도 하다. 잘 잠들어서 시차적응도 잘 하고, 내일도 재밌게 놀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