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 D+3
오늘 아침은 베이글로 시작! 코스프레 행사 같은 게 있는건지, 아침부터 코스프레 한 사람들이 많았다. 뉴욕의 길거리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인종도 다양하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하고, 옷차림도 걸음걸이도 다양하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 장애를 가진 분들도 거리에서 자주 보인다는 점이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몸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회에서 지워져버리는 반면, 뉴욕 사회에서는 여전히 문화생활도 하고 거리를 누비며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좋게 느껴진다. 더 자주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첼시! 주말에만 열리는 첼시 플리마켓에 갔다. 빈티지 컵, 뉴요커 엽서, 카메라 등등 구경할 게 많아서 좋았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한국이든 빈티지마켓은 늘 살 건 없지만 구경하기는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도 빈티지를 많이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여태까지 성공한 건 빈티지 트렌치 코드 한 벌이 전부이다. 미국의 플리마켓에는 별별 물건들이 다 있는 게 신기했다. 빈티지 컨셉의 가게를 준비하고 있다면 살 게 많을 것 같다.
뉴욕에는 좋은 서점들이 많아서 넘 좋다.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걷다보면 서점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들어가서 내가 읽은 책의 미국판 표지는 어떤지 살펴보는 일은 넘 재밌다. 미국 표지는 한국 표지에 비해 별로 예쁘지 않다. 표지와 만듦새가 예뻐야 공 들여서 만든 책이구나 라고 생각해왔는데, 미국의 책들을 보니까 표지가 뭐가 중요하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은 참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나라구나 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책 마저 표지가 예뻐야 한 번 더 들여다 보게 된다니. 표지가 예쁘지 않아도 내용을 더 들여다보는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첼시마켓 가는 길에 지나친 공원에서 재즈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어딜가든 재즈가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온다. 공원에는 누워있는 사람, 밥 먹는 사람, 책 읽는 사람, 이야기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 나도 아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공원에서의 휴식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공원에서 책 읽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라면 좀 더 행복할텐데
그 어떤 공원에서든지 햇볕 아래 돗자리를 펴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보였다!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의 날씨가 넘 좋아서 행복하다. 바람은 시원해서 땀은 안 나는데, 햇볕은 아직 여름 햇볕인 상쾌한 날씨. 우리나라 추석 지나고 가을바람 불 때의 날씨라고 해야할까. 다른 계절의 뉴욕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늦여름의 뉴욕은 정말 아름답다.
첼시마켓에서 먹은 피자. 살면서 먹어본 피자 중 제일 맛있었음..!
그리고 서점에서 발견한 '나에게 쓰는 편지 모음 책(?)'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찍어둠. 나는 매년 12월 31일에 내년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를 다이어리 맨 뒤에 꽂아두고 다음해 12월 31일에 읽는다. 1년 전에 예상한 것과 아예 다르게 한 해가 흘러간 때도 있고, 예상을 적중한 때도 있다. 어떤 한 해를 보냈든지간에 1년 전의 내가 보내는 애정과 믿음, 응원을 읽다보면 힘이 난다.
북드롭 이벤트 기획할 때 참고 했던, 뉴욕의 오리 보물찾기함이 첼시마켓에 전시되어 있었다. 심플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니.. 기획 의도가 넘 감동이다. 내 기획도 누군가에게 그런 즐거움이었기를
휘트니 미술관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보러 간거였는데, 크리스틴 선 킴이라는 작가의 회고전을 하고 있다고 해서 봤다. 보다보니까 그림체랑 글씨체가 어딘가 익숙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 국현미 <기울인 몸들> 전시에서 봤던 작품의 작가님이라는 걸 알게 됐다! 너무너무 반가웠음! !
-오선지 위에 맞지 않게 놓인 음표들을 통해 사회에서 무시당하는(ghosted) 사람들, 청각 장애인의 심정을 벽화로 표현
-영상 매체를 볼 때 수화 통역사가 가져야 하는 충분한 공간을 그린 작품
-들을 수 있는 사람, 들을 수 없는 사람 모두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자장가를 작곡한 작품 등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았다.
호퍼,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 모두 좋았다 . 그리고 뉴욕에 와보니 왜 호퍼가 고독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지 좀 알 것 같다.
그렇게 전시를 보다가 아래를 내려다 봤는데 강가에 웬 모래사장이 있는게 아닌가..! 모래사장은 못 참지! 전시 보고 바로 아래로 내려가봤다. 역시나 이곳에도 수영복 입고 태닝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도 자리 잡고 앉아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 해변가에 온 것 같아서 좋았다. 강가인데도 모래만으로 해변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하다니. 천재 ! 이 복잡하고 정신 없는 도시에 어떻게든 자연을 두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원들도, 강가의 모래사장도.
숙소로 돌아가다가 파인애플 맛챠 레몬에이드라는 희한한 음료의 입간판을 봤다. 홀린듯 들어가서 사먹어봤는데 요상하면서도 맛있는 맛이었다. 미국에서 맛차가 유행이라는 건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와서보니 그 인기가 더 대단한 듯하다. 이런 음료나 맛챠 스트로베리 라떼? 같은 요상해보이는 음료도 많이 보인다. 내 또래 여자애들 길거리에 지나가는 것 보면 모두가 초록색 음료를 들고 있다. 아메리카노 들고다니는 사람들 거의 못 본듯. 사실 맛차에 별로 관심 없는데 사람들이 다 먹고 있으니까 괜시리 나도 먹고 싶어진다.
계속 2만보 이상 걸었더니 허리가 너무 아파서 숙소로 들어와서 쉬었다. 더 쉬고 싶었는데 뮤지컬 <하데스 타운>를 예매해둬서 어쩔 수 없이 극장으로! 그런데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었다. 하데스타운의 재즈 소울은 아무래도 한국에서 재연해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지하 하데스 타운으로 내려가는 리프트 연출도 한국 극장에서는 구현이 어려워서 문으로 바꿨다고 하니.. 마지막 장면의 여운도 좀 덜했을 것 같다. 여러모로 오리지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컸다. 다리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던 경험, 보길 너무 잘 했다! 뮤지컬이랑 드레스 코드를 맞추는 사람들도 인상 깊었다 특히 검정드레스에 빨간 컨버스 신고 오는 사람! 멋져! 뮤지컬 보면서 팝콘도 먹고 술도 먹고 되게 편하게 뮤지컬을 보던데 우리나라도 숨죽여 보기보다 좀 더 즐기면서 보면 좋겠다.
사실 친구가 직장인 뮤지컬 극단에서 이 작품을 올렸었고, 나한테 같이 하자고 제안한 걸 거절했었다. 그 기회로 알게된 작품인데, 이 작품을 알게 된 게 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을 알면서도, 어떻게 될 지 알면서도,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믿고 계속해서 노래하자는 메세지가 너무 좋았던 작품. 한 동안 음악을 계속 들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