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겨울

2026년 1월 회고

by 위다혜

2025년에는 여름을 기필코 즐겁게 보내겠다는 다짐을 했다면, 2026년에는 겨울도 꼭 행복하게 보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겨울엔 늘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안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나는 편인데, 올해 겨울은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부정적인 생각을 덜 하면서 지내고 싶었다. 우선, 추위를 많이 탄다는 점이 겨울을 싫어하게 만든 큰 요인인 것 같아서 무장할 수 있는 겨울 아이템들을 샀다. 기모 나시, 울트라 기모 히트텍을 새로 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그부츠도 선물 받았다. 든든한 겨울템들이 있으니까 확실히 겨울을 더 잘 보낼 수 있게 되었다.(진작 살걸!) 더불어, 못생긴 검은색 겨울옷을 입는 게 겨울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어서 아이보리 패딩도 하나 새로 샀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겨울날에는 최대한 다양한 색의 코트를 입고 다니려고 한다. 겨울의 무채색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싶은 나만의 노력이다.

가장 큰 변화는 1월부터 출근 시간을 바꾼 것이다. 사실 작년 1월부터 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너무 바빠서 차마 바꿀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올해도 직전까지 고민하긴 했지만,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어서 일단 도전해 봤고 대만족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퇴근 후 약속이 많이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데, 겨울이 지나면 일정들이 다시 많아질 거라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 그 정도로 지금의 일상이 좋다.

저녁에 별 일정이 없으면 10시 반에는 침대에 누우려고 한다. 그럼 많게는 무려 8시간 반이나 잠을 잘 수 있다! 요즘에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이 떠지는 경우도 많다. 일찍 일어나지는 날에는 좋아하는 시나노 골드 사과를 깎아서 견과류 버터와 함께 먹는다. 땅콩버터, 피스타치오버터, 아몬드버터 중에 뭘 발라먹을지 고민하는 게 아침의 즐거움이다. 시간이 더 여유 있으면 달걀도 하나 따뜻하게 삶아 먹는다. 초반에는 아침에 러닝도 해보고 헬스장에도 가봤지만, 나는 공복 운동이 안 맞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신 아침에 책을 몇 장 읽거나 스도쿠를 한다. 그리고 출근길을 조금 일찍 나서서 햇빛을 쬐며 산책을 조금 하다가 지하철을 탄다. 아침에 햇빛을 쬐는 일이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에 좋다고 한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짹짹거리는 새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출근하는 일, 캄캄한 새벽이 아닌 밝은 아침에 걸어 다니는 일, 따뜻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더 상쾌하고 조금 덜 춥게 느껴지는 겨울 아침이 좋다. 오후 업무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긴 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조용한 사무실에서 집중하는 시간도 좋고, 퇴근할 때 나누는 몇 마디의 인사도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하게 한다.

겨울을 좋게 만든 큰 요인 중 하나는 이번 달에 떠난 스키 여행이었다. 추울 땐 무조건 추위를 피해서 따뜻한 곳에 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몸을 중무장하고 추위를 향해 걸어 들어가 그 추위를 즐기는 경험을 하고 나니 추위가 덜 무서워졌다. 작년에 스키 강습을 받아서 그런지 올해 실력이 조금은 늘어서, 중급 코스까지 갈 수 있게 됐다. 더 잘하게 되니 더 즐겁고, 스키 타기가 즐거워지니 겨울이 더 좋아졌다.

이번에 스키장에 갔을 때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었다. 자연설이 내린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는 건 흔치 않은 행운이라고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정에 없던 스키를 추가로 탔는데, 펑펑 함박눈이 내리는 설산의 풍경을 보며 뽀득뽀득한 자연설 위에서 타는 스키는 정말 최고의 경험이었다. 퇴근길을 불편하게 만드는 눈이 아니라, 스키 타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눈으로 보고 나니 눈 내리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아이슬란드, 핀란드 같은 겨울 나라에 여행을 왜 가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멋진 풍경을 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언젠가 책 <설경>의 배경이 되는 일본 니가타 지역의 스키장에도 가보고 싶어서 서치를 하다 보니 내 인스타그램 탐색창이 어느새 하얀 설경으로 가득 찼다.

겨울의 매력을 점점 알아가는 중이다. 평생 싫어할 것 같았던 무언가의 매력을 점점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경험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열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였을 때 세계가 이렇게도 확장될 수 있구나를 느낀다. 겨울뿐만 아니라 지금은 이해 못 하는 어떤 세계에도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쑥 깊이 들어가 봐야지. 그렇게 한 걸음 더 내디뎠을 때 나의 세계가 더 행복해지는 기회가 열리는 것 같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1월 결산~

- 이달의 책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양면의 조개껍데기, 겨울어 사전, 오직 그녀의 것

- 이달의 영화 : 만약에 우리, 아바타 불과 재

- 이달의 드라마 : 퍼스트러브 하츠코이, 이 사랑 통역되나요

- 이달의 예능 : 흑백요리사2, 짱구아빠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 이달의 영상 : 72시간 소개팅 대만편, 후쿠오카편, 이동진이 말하는 기록하는 삶, B주류초대석 명작영화월드컵, B급영화월드컵, 인생만화설명회

- 이달의 음악 : Good Parts - 르세라핌, 이렇게 좋은 겨울 - 성진환, 아니어도 돼 - 박소은, 0+0 - 한로로, bad - wave to earth

- 이달의 연극 :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이달의 문장 :

"성장은 잘 다듬어진 돌뿐만 아니라 깨진 돌이나 건축자가 버린 돌로 집을 짓는 일과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글쓰기가 운명이라고 생각한거죠. 이게 나의 할일이다. 그러니까 '안할 수 있으면 안 하겠다'가 아니라 나는 이것을 반드시 해야 되는 사람이다. 근데 괴롭다 였거든요. 그러니까 괴롭더라도 계속 쓰는 게 그게 내 삶이라고 생각햇던 거죠" - 이동진이 말하는 기록하는 삶

"겨울에 작아지는 사람들의 모임은 만남이 없는 모임이다. 어쩌면 당신도 함께하고 있는 만남이다. 여름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겨울만 되면 무기력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떠올린 가상의 모임이기도 하다. ... 자신에게로 가로질러 가는 시간을 어째서 무기력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 여름의 순간들을 모아 겨울 안감으로 깁는 사람들. 겨울을 좋아하는 '겨울 사랑단'을 만나, 겨울의 좋은 점을 엿들으며 자신만의 '겨울'보내기 방식에 대해 탐구하는 사람들" - 겨울어사전

- 이달의 행복 : 함박눈 속에서 스키 타기, 스키 타고 들어와서 노곤노곤한 몸으로 재밌는 거 보면서 와인이랑 야식 먹는 순간, 무 조림을 기다리며 스도쿠 풀기, 20년지기 친구들이랑 서로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 새로운 독서모임에 가서 '아! 이런 세계도 있었지!'라고 느낀 시간, 새로운 기획을 시작했던 순간, 퇴근 후 번개만남에서 기획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했던 시간

- 이달의 장소 : 디스이즈텍스트, 라이팅룸, 스물트론스텔레, 리딩앤리스닝스테이지, 모나 용평, 바집

- 이달의 도전 :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나 정리하고 하나 새로 시작한 일,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고 갈등을 해결한 일, 쉬기로 결심한 일, 출근시간을 바꾼 일, 일을 덜 하기로 결심한 일, 스키장에서 중급 코스 무서웠는데 도전한 일

- 이달의 소비 : 더스도쿠 500, 두바이쫀득쿠키

- 이달의 음식 : 처음으로 해 본 무 조림, 금태솥밥, 먹심에서 먹은 한우, 스키장에서 먹은 화이트 와인(이름이 기억 안남 ㅠㅠ), 퇴근 후 번개 만남에서 먹은 엄청 큰 냄비에 나온 닭도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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