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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Mar 07. 2020

이토록 아름다운 행성이라면

책 <지구에서 한아뿐>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의 상황과 콘텐츠의 내용이 적합하게 맞물려 마음에 들어오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사인데도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든지,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위로해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러한 콘텐츠는 그 시절과 함께 마음 속에 길게 남는다. 아마 훗 날 '취준 2시즌'을 기억할 때 내가 기억할 콘텐츠는 정세랑 작가님의 책들, 그 중에서도 <지구에서 한아뿐>일거다.



차갑고도 딱딱한 경제 자격증 시험, 정말 가기 싫었던 꼰대같았던 공공기관 면접, 그리고 나름 가고 싶었던 좋은 회사의 면접을 모두 마친 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읽었던 책이다. 그 날 광화문의 오후 햇살과 정세랑 작가님의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소설의 조화는 단연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날 이후로 정세랑 작가님에게 빠져 거의 모든 책을 구해 읽어봤지만 이 책만큼의 따뜻함을 가진 책은 없었던 것같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한아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위한다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힘쓴다거나, 사회적 기업의 사업에 관심을 가진다거나하는 일들을 통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 땅의 사람들, 지구를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항상 생각한다. 지금은 기업의 채용공고에 맞추어 조직의 톱니바퀴 중 하나로 들어갈 뿐이지만 내가 입사한 후에도 계속해서 자기계발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아라는 주인공은 단순히 주인공을 넘어서 나의 롤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아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는 오래된 옷을 수선하여 다시 입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 '언젠가 자기 브랜드를 갖게 될거라는 기대'를 배신하고 한아는 그 작고 허름한 가게에서 즐겁게 일을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친환경적인 일을 주변의 기대, 사회의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하게 해나간다는 점에서 한아가 좋았다. 가족 같은 친구와 함께 일하는 것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도 내가 꿈꾸는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오염, 노동력 착취 등의 부정적인 부가문제들을 일으키지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좋은 일을 위해 즐겁게 쓴다는 것이 한아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했다. 아마 취준 중인 내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내 능력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 그에 딱 맞는 사람인 한아가 더 좋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모험의 경민

새로운 나라로의 모험을 사랑해 결국 우주로 떠나버린 경민 또한 과거의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이름도 낯선 나라에 반해 그 나라의 모든 자료를 흡수하며 마치 전생에 거기서 태어났던 사람처럼 1년 내내 그곳 이야기를 해댔다.'라는 문장을 봤을 땐 실제로 1년 동안 스리랑카 얘기를 하며 '전생에 스리랑카인이었나' 생각하던 내가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사실 경민은 한아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어찌 보면 좋은 역할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곳에 대해 궁금해하고 가보고 싶어하는 경민의 그 열망, 그리고 그런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잡는다는 점, 모험을 위해서라면 안정적인 컴포트 존과 친애하는 사람들을 잠깐 떠나는 것도 감수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됐다. 한아를 떠난 건 정말 나쁘지만,,, 사실 경민이 떠난 이유도 나로서는 굉장이 납득이 갔기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경민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한아에게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보고 난 아마 내 주변의 일들과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고, 더 이상 소중하지 않게 시시하게 느껴져 그 일상의 소중함을 찾기 위해 떠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쉽게 질리고 지루해하며 주변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아, 떠났을 때마다 여행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소중함, 그 소중함으로 비롯된 감사함과 주변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아마 경민이 떠난 우주여행의 끝도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외계인 경민은 한아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지구까지 달려오고, 한아의 지구를 아름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로 나아가서도 함께한다. 경민은 우주를 건너온 외계인이라는 점에서 이미 비현실적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연애 상대라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의 겉모습, 지위, 명예, 소득 등을 따지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의 지구에 대한 마음가짐과 이를 아끼는 마음을 보고서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제발 다음 연애가 있다면 자신에게 득이 되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온전한 내 특징들을 좋아해주는 경민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모습, 내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 내가 하고 싶은 사랑,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과 삶의 태도 등을 볼 수 있어서 나에게 더 다가온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부의 영향으로 잠시 정체되어 있지만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취준기간에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방향을 다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적합한 책이었다. 부정적인 사건사고 그리고 좁은 취업문에 자꾸만 이 세계를 비난하게 되는 요즘이지만 그럴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나 하나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사랑하고 작게나마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내 삶이 조금은 나아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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