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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Mar 11. 2020

"사랑의 특성은 번지는 것에 있으므로"

책 <목소리를 드릴게요>



지난 2019년 하반기, 그리고 지금 2020년 상반기의 나의 머릿속에는 오직 취업생각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을 해야하지, 어떤 능력을 더 쌓아야하지, 어떻게 나를 더 포장하지… 친구의 안부를 묻거나, 낭만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등의 일조차 내팽개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오직 나 밖에 안 보였다. 주변의 사람조차 둘러보기 힘든데, 주변의 동물과 식물과 곤충과 이 지구를 둘러볼 여유가 있었을 리가 없다. 여유가 있었던 한 때에는 가능한 채식을 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환경 보호를 위해 제로 웨이스트로 살기를 시도해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달 간의 나는 나만 생각했다. 내 일로 바쁘고 내가 살아가는데 바쁜데 어떻게 실리콘 빨대를 챙기고 텀블러를 챙기고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는 음식을 빼고 챙겨 먹을 수 있겠어 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으며 스케쥴에 치여 이렇게 생각했던 나, 그리고 나처럼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이 돌이킬 수 없는 지구의 오염을 만들어낸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은 잠시나마 이기적으로 생각했던 나를 반성시키고 이기적인 마음과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마음을 빼내어 원래의 나로 ‘정화’시켜주었다. 이 소설은 쓰레기가, 지나친 육식주의가, 기술 발전의 부작용이 이 지구에 미치는 현상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것들이 지구에 영향을 미친 후의 세계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재미있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리셋>이다. 거대 지렁이가 나타나 지구를 리셋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책 뒤에 적혀있는 작가의 말이었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환경에 대해 생각할 때, 멸종되는 동물이나 쓰레기 때문에 아파하는 동물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생각해본 적은 있어도, 미래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리셋>을 읽으면서 현재 점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알고보니 사실은 환경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일들. 지금까지 습관으로 굳어서 변화시키기 힘들지만 굳이 안 해도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 정말 미래 세대의 눈으로 우릴 보면 지구가 오염되어가는 와중에도 자기들 편하자고 파괴하는 행위를 계속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지구를 리셋하는 것이 ‘거대 지렁이’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사슬 꼭대기의 포식자라든지 외계인이 아닌 지렁이. 찰스 다윈이 지렁이 애호가였다며 지렁이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무위키에 지렁이는 ‘이 녀석이 없으면 인간 농경의 역사도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존재.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우리 문명이 존재하기 한참 전부터 지금까지 먹이 사슬 최하위에 놓이고서도 묵묵히 땅을 일구며 지구의 토양을 풍성히 해준 동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땅의 체력을 책임지고 계신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묘사된다. 지구의 오염에 환멸을 느낀 먹이 사슬 최하위 지렁이의 반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런 대사도 나온다.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 했다’. 

난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벌레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보아왔다. 이렇게 지구와 땅을 책임지고 있는 벌레들을 꺼려하는 것도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까. 벌레들은 지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신들을 꺼려하는 인간들을 매우 싫어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왜 지렁이가 지구를 리셋하려고 했는지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이 끝나가는 와중에도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애칭을 붙이며 친밀감을 중요시하고 서로 사랑하며 구원하려 한다. 정세랑 월드에서 매번 느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상적인 따뜻함이다. 책을 읽으며 인간이 아닌 것들을 함께 생각하고 인간들도 서로를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이 온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풍요롭고 평화로웠고, 앞으로 그런 세계가 되길 바라게 됐다. 마지막 작가의 말 또한 인상적이었다. 

 ‘새들이 다 사라져가는 세계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치우친 게 아닌지 항변하고 싶다…우리는 이제 우리와 닮은 존재가 아닌 닮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특성은 번지는 것에 있으므로 머지않은 날에 정말 가능할지 모른다.’ 

정말,, 정세랑 작가님처럼 따뜻한 사람이,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이런 소설로 풀어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쁜 마무리였다. 내내 멸망을 향해 다가가다 마지막 즈음 희망의 끈을 내려주는 이 소설의 마지막처럼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인간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 망해가는 지구를 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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