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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Mar 22. 2020

책의 귀소본능

책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평소에 운명처럼 나에게 딱 맞는 책이 나타날 때면 종종 하던 생각이기에 이 문장을 보고도 이 책을 안 읽을 수는 없었다. 하나의 문장만 봐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기에 저렇게 따뜻한 말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이라면 분명 좋을거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역시 맞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북클럽 사람들과 건지섬은 책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군의 억압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우연한 기회로 북클럽을 만든다.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책을 읽고, 추천하고, 토론하고, 이야기 하고, 음식을 나누며 책을 통한 따뜻한 연대로 힘든 시기를 이겨낸다. 거즘 2년 동안 독서토론학회에서 활동했었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인지 나는 언제나 이런 북클럽,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책에 대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다보면 하나의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그는 또 다른 책 혹은 새로운 관심사로 이어지며 이러한 연결의 끈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가벼운 매체들이 할 수 없는 이 무한한 가능성과 가능성을 넓히고자 하는, 서로에게 내가 누린 즐거움을 소개시켜주고 싶어하는 책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한다.

또한 이러한 북클럽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책으로 기록하려는 작가 줄리엣이 정말 마음에 드는 주인공이었기에 더 몰입이 잘 됐다. 누가봐도 훤칠하고 출판계의 거물로 불린다는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이 기록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주체적으로 떠났다는 점, 그리고 세상이 '결혼하기 좋은 조건의 남자'라고 부르는 사람 대신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함께 책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별 고민없이 선택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세상의 시선에 맞춰, '잘 팔릴 것 같은' 이야기를 쓰는 대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그 즐거움과 행복함이 나에게까지 느껴졌고 그 느낌이 얼마나 충만한 느낌인지 알기에 독자인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또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며, 주위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지내는 긍정적인 줄리엣을 보면서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됐다. 줄리엣이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의 주된 인물인 엘리자베스 또한 전쟁 중이라는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말 좋았다. 그 외에 등장하는 북클럽의 사람들도 하나하나 특색이 강하고 따뜻하며 사랑스러운 인물들이라 모두 정이 들어버렸고 책이 끝날 때쯤 내가 북클럽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보며 시골마을에서 함께하는 독서모임에 대한 환상이 생겼는데, 북클럽 관련 책까지 읽어버리니 더 그 욕구가 강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하는 시국이라는 것, 여유롭게 북클럽에 참여할 수 없는 취준생 신분이라는 것이 굉장히 슬프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딱 맞는 북클럽이 귀소본능을 가지고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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