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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Dec 26. 2020

무릎을 굽히는 존중

책 <어린이라는 세계>

최근 의도치 않게 어린이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어린이라는 세계-부지런한 사랑-동생이 생기는 기분의 순서대로 읽었더니 마치 와글와글 어린이들 사이에 있다 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책은 단연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재택근무 기간 중 일하며 책읽아웃을 듣는데, 김하나 작가님과 김소영 작가님의 인터뷰가 정말 인상깊고 재밌고 따뜻하고 그야말로 완벽한 회차였기에 이 책은 안 읽을 수 없다고 결심했었다. 인터뷰만으로도,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지는 작가님의 어린이 사랑과 작가님들이 들려주시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화들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어린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일부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에 더 가깝다. 막둥이 동생 덕분에 소위 귀엽게만 여겨지는 어린이의 실체를 너무 봐버린 탓일까. 집에서 울고 말 안 듣는 어린이를 항상 보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면 나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해버릴 정도였다.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 힘들고, 그게 온전히 내 몫이 될 가능성이 크기에 내 커리어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아이를 키우기 힘든 세상에, 부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은 아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만든 세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고, 분명 누군가의 배려와 존중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마냥 귀엽고 착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것도 좋지 않지만, 부정적인 편견은 더 좋지 않다고 느꼈고 그동안 나의 생각들에 대해 조금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인 어른으로서 어린이가 더 잘 자라날 수 있는 세상, 적어도 내가 보고 듣고 자란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다. 

읽는 내내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따뜻하다고 느꼈다.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신 분 같아서 더 편안하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막둥이 동생은 이제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려는 시기에 있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만날 기회가 최근에는 없었는데, 아이들의 기발한 발상이나 고운 마음씨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니 웃음이 나왔다. 또, 어린이의 사회생활이나 작은 키와 낮은 시야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 한 어린이의 시각을 경험해보게 해서 좋았다.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시선을 많이 경험하게 했던,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어린이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만든 책이었다. 

또한, 이제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정체성을 전환한 지 고작 6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내가 온전한 '어른'이라는 인식을 딱히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아, 나 이제 진짜 어른이구나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한 1인분의 어른. 이제 정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니 나에게도 다음 세대가, 어린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다고 느꼈다. 어린이에 대한 존중이 가득 한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이 즐겁게 같이 놀고 나눌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먼저 걸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어른은 물론 어린이에 대한 존중도 충분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랐던 연말의 책!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이의 잠자리를 살피고,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 주고, 그림책을 읽어 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악몽은 자기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하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어른이 '여성'이기 떄문에 무서워하게 되는 그 많은 일들이 모두 그렇다. 그런 무서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좀먹고 무너뜨린다. 우리는 어린이가, 여성이 안전을 위협받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매 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친구는 엄마가 되어 어떤 삶의 순환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바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향과 속도가 다른 자리에 나와 친구가 있었다.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질친다고 뉴스에서는 다급히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 

-세준이 세대와 나의 세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오늘의 어른이 어떤 세상을 가꾸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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