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책 천 개의 파랑은 아이유의 노래 '마음'을 닮았다. 아이유의 마음을 소설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천 개의 파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 제게 대답하지 않으셔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다고 말하는 그 가사들의 화자가 된다. 조금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맑고 깨끗한 마음과 그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정세랑의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나서 나의 사랑을 사람이 아닌 대상들로 확장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면,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은 그 사랑의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줘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미래에 분명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sf 소설답게 섬세하게 다루고 있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더불어 살아왔지만 그 역할에 비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은 인간뿐만이 아닌데 인간만 중요하게 다루고 나머지 생물들은 배제하는 것 그리고 인간들 중에서도 조금 다른 상황에 있는 인간은 배제하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전에는 조명이 가닿지 않았던 부분을 비춰주는 느낌이 들었고,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점점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트렌드가 그렇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동물과 식물에 대한 애정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스펙을 쌓느라 취업준비를 하느라 나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누구를 돌보는 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2020년이 되어 갑자기 반려동물친구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고, 식물 책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식물에 대한 애정을 행동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강아지가 잘 자고 있는지, 밥을 못 먹은 건 아닌지 걱정하는 일들. 식물에게 물을 주며 변화를 살펴보는 일들, 분갈이를 해주고 스트레스받진 않았는지 돌보는 일들은 이전까지 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동식물을 왜 키우는 걸까 생각했던 나날들이 있었지만 동식물을 한 번에 내 삶에 들이게 된 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의 차원이 펼쳐졌다고 느낀다. 물론 생명을 기른다는 책임감의 무게도 있지만, 그 무게를 넘어서는 사랑이 샘솟는다. 특히 식물의 경우 나는 모종을 가져오는 것보다 씨를 발아시켜서 처음부터 키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 애정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인간이 아닌 자연의 생명들을 곁에 두면서 자꾸만 더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경주마 투데이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좀 덜 이기적으로 굴고 인간이 아닌 종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 세상에 왔으면 좋겠다.
"이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볼 때 사랑스러워하는 거니까요. 근데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누구나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동물을 키우면서도 동물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 함께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동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행에 따라, 필요에 따라."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느리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 물질적인 목표보다는 주관적인 행복을 더 중요시하는 내 가치관과 매우 잘 맞았기 때문이다. 요즘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지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나에게 딱 맞게 다가온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중고등학생 때는 수능 준비, 대학생 때는 스펙 쌓기, 취준생 때는 각종 자소서와 면접. 지금까지 그렇게 한 곳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려와 목표를 이루었으면 이제 좀 쉬는 법도 알아야 하는데, 이젠 인생에 일하는 것과 쉬는 것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마치 중간고사 공부해야 하는데 잠깐 게으름을 피울 때 느꼈던 그 압박감이 갑자기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예고 없이 그 기분을 맞이한 나는 황급히 내가 할 게 있었나?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지만 나에겐 더 이상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 할 일도 없는데 갑자기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돌아보며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회사원이 되어서도 재테크니 자기 계발이니 하며 24시간을 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과연 계속해서 그렇게 달려나가는 것이 정말 옳은 방식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주입된 삶의 방식인 건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우리는 정말 빠르게만 가려고 하는 게 아닐까. 사실 나는 여기서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면 어떤 세계가 다가오게 될지 조금 무섭기도 하다. 물론 과학의 발전은 삶의 질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고 분명 필요한 것이겠지만 효과적인 기술이니, 지금이 기회라는 부동산이니, 돈이니, 1초 단위로 바뀌는 주식 같은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느리게 사는 시간도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주변의 생명체들도 사랑으로 살펴보고, 내가 아닌 약자들의 고통도 돌아보고 공감하면서 일부러라도 브레이크를 밟으며 함께 천천히 가는 시간이 있다면 모두 조금은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