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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Apr 02. 2020

바이러스의 시대, 희망을 닮은 여름을 찾아서

책 <해가 지는 곳으로>

이 책의 장르는 아포칼립스 sf라고 하는데, 하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기가 바이러스의 시대이다보니 나에겐 sf라기보단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일수도 있겠다는 현실감을 가지고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외출을 삼가고 사람들을 경계하다가 (여기까진 현실과 너무 똑같다) 점점 사람들이 강도짓을 하고 살인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모두 그 도망의 길을 함께한다. 

세상이 망해가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책은 그 안에서 여전히 생존하고 더 강해지는 사랑의 다양한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유를 대며 타인을 죽이는 모습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의 행동을 보이는 모습도, 약속이라는 형태로 사랑을 지키는 모습도 모두 사랑이었다. ‘사랑에는 결말이란 게 없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결말을 원해서 스스로 매듭을 짓더라도 매듭은 매듭일 뿐. 매듭 다음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건지의 사랑에는 매듭이 없다. 내 사랑에도 매듭은 없다.’ 미소의 말처럼 각자의 사랑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결말이란 것은 없고, 여기서 끝내겠다는 의지로 매듭을 짓는다해도 사랑은 그 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형태는 당장 지킬 것이 직장, 세금, 대출, 학점이 아닌 목숨뿐인 사람들에게 더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시종일관 추위에 힘들어하는 주인공들은 여름을 찾아가고 싶어한다. 1년 내내 따뜻한 바다로. ‘우리는 어디로가? 우리는…여름을 찾아서. 여름은 어디에 있는데? 저기, 해가 지는 곳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여름일 정도로 여름나라를 좋아하는 나라서 여름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이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고려해야하는 사항 중 날씨라는 사항이 사라져 얼어죽을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 만으로도 큰 고민이 덜어진다. 추위는 너무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한다. 또 따뜻한 햇빛과 바다가 가득한 여름은 희망의 특성과도 닮아 보여 더 좋아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그런게 지나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지금은 4월이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춥게 느껴지고, 1-2월부터 멈춰버린 일상때문에 여전히 겨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름을 사랑하는 나는 얼른 그 햇빛을 맞이하고 싶고 이 추위같은 바이러스 상황이 나를 망가트리지 않도록 내 안의 여름을 마주하며 꼿꼿이 서있어야겠다. 


'그러니 희망은 내가 움직여야 닿을 수 있는 대륙이 아니라 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가 태양을 돌다 보면 나타나는 밝고 따뜻한 계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서 그 계절을 맞이하는 것뿐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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