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 전 그토록 신청하고 싶었던 문학동네 북클럽에 가입했다. 받을 수 있는 책들 중 가지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뭘 고를까 고민을 하다가 이왕이면 여성 작가의 책을 고르고 싶어, 평소 좋아하는 요조 그리고 임경선 작가님이 쓰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라는 책을 골랐다. 임경선 작가님의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는 내가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 날 일으켜 주었던 책이고, 요조 님은 평소 팟캐스트로 많이 접하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삶의 가치관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을 해왔던 터라 두 신뢰하는 작가의 만남이라니 기대가 됐다.
내가 가는 길에 앞서 걷는 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전까지는 30대 여성은 물론 40대, 50대 여성의 삶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등장한다고 해도 이 책에도 나와있듯이 몇 가지 정형화된 유형에 한정되어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진 다양한 나잇대의 여성들을 매체를 통해 만나볼 수 있어 정말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고, 이 책 또한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든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다 보면 평소에 좋아하는 언니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는 느낌이 들고 나도 저렇게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점도 있다고 느꼈고 역시 언니는 언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다.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솔직함과 관련된 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분명한 해나 민폐를 끼친 게 아니라면, 세상의 기준이나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잡다한 소음에 휘둘릴 필요가 없더라. 또한 완연한 어른이 되어 솔직하기로 작정한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하지만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아. 솔직함을 포기하면 당장의 불편함이나 위기는 모면해도 가면 갈수록 근본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얕은 위안으로 겨우 연명하거든. 나는 깊은 충만감을 원하고, 내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 무엇보다 소중해.' 나는 당장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종종 솔직해지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게 단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라, 임경선 작가님의 이 글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의 정곡을 찔렀다. 남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말을 하는 건 정말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솔직하지만, 딱히 어찌 되든 상관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좋다고 넘어가는 편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딱히 나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해왔지만 이런 솔직하지 못함이 쌓이고 쌓여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진짜 내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게 아닐까.
두 작가님 모두 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잘 해내고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여자가 30살이면 이제 끝난 거니 어쩌니 소리를 듣던 시대를 지나 이젠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 30대, 40대 언니들의 이야기를 자기 전 스탠드를 켜고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온전히 내 선택으로만 꾸려갈 1인분의 삶을 가져가야 할 시간인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우리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라고 이야기해주는 언니들이 곁에 있는 기분이었다. 조언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적당히, 헐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거든. 자신의 전부를 담아 부딪쳐가면서 살았고, 그렇게 해서 체득한 자신의 경험치와 관점이 있어. 자기 힘으로 이룬 성취들이 있으면서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결핍도 직시하기에, 오만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자기 객관화가 가능할 정도의 겸손함이 있지. 또한 자아가 단단해서 주변의 눈치를 보거나 시류에 편승하거나 남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 않아. 자기 분에 넘치는 탐욕도 없어야 해. 기본적으로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속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를 정비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직언도 함부로 남용하지 않기에 그들이 해주는 말에는 무게가 있어.' 읽으면서 정말, 내가 생각한 완벽한 어른의 삶이고 나 또한 이런 멋진 사람이 돼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신뢰해주기를, 내 말에 무게감이 실리기를 바라게 됐다. 과연 내가 어느 회사에 취업을 해서 어떤 삶을 꾸려나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디에 어떤 자리에 가든 항상 뚜렷한 신념과 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의미 없고 가벼운 사람보단 무게 있고 진중한, 의미 있는 생각을 하면서 늘 깨어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이 언니들처럼!
-'자신이 가진 자원을 얄짤없이 관리하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목소리는 결코 지금의 그 나른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었을 거야.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헤퍼서 조금 더 손해 보고 상처 입는다 해도, 그래도 역시 '줄 수 있는'사람, '주는 법을 아는'사람은 더없이 근사한 거 아닐까'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이상으로 '각자의 개체로 흩어질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그러면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성숙해지고, 서로가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같아.'
-우리가 보는 방송, 우리가 듣는 음악, 우리가 만나는 친구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은연중에 우리 태도의 일부가 되겠죠.
-좋아하는 일을 독립적으로 한다는 면에서, 그리고 별로 눈치를 안 본다는 점에서, 나는 그것을 자유라는 단어로 이해하고 있어. 앞으로도 시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도, '핵인싸'가 아니라고 해도, '한물갔다'라고 손가락질받는다 해도, 좋아하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며,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너끈히 자유롭게 살아가자.
-비겁함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어. 나는 비겁한 사람이란 우선 자기 자신과의 문제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사람 같아.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해소하거나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과거의 상처가 있어도 그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아물게 하려고 애쓰는 대신, 남을 탓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만 하는 느낌이야.... 스스로에게 정직하지도 못해. 자기 자신한테 정직하지 못하니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뒤틀리고 꼬인 모습을 보여.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 가령 자기나 주위 사람이 어려운 일을 겪게 될 때, 리트머스 테스트처럼 그 사람의 본질이 나타나는 것 같아.
-이거 분명 당신이 좋아할 거야"라는 말은 은근히 이상한 말이에요.
-그래, 변화라는 것은 낯설고 불편하고 쉽지는 않지. 물론 변화로 인해 내가 신선한 자극을 받거나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으니 불평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지. 다만 이제야 비로소 어떤 한 시기와 작별했다는 느낌에, 나도 내 딸아이처럼 어떤 한 시기와 작별 했다는 느낌에,... 감정이 복잡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