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처돌이의 이유들

책 <아무튼, 여름>

by 위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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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타공인 여름처돌이다. 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제일 좋아하는 단어도 여름, 그 외 여름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여름이 시작되면 마음이 울렁거리면서 갑자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힘이 솟아오르고,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기분으로 가득 찬다. 그런 기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 여름 노래를 들으며 여기저기를 걷고, 자전거를 타며 놀러 다닌다. 그러다 슬슬 가을이 오면 여름이 끝났음을 아쉬워하고 겨울이 시작되면 급격하게 우울, 피곤해지며 힘을 잃는다. 아마 따뜻한 남쪽 섬에서 자란 탓에 추위를 정말 많이 탄다는 점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라는 것이 겨울을 싫어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인 것 같다. 심지어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름은 정말 많이 사랑하는 수준이고 겨울은 극혐하는 수준이라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하냐고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나에게 여름은 그냥 계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정말 많이 신났다. 원래 아무튼 시리즈는 사서 읽은 적이 없는데, 나 같은 여름처돌이가 쓴 책이라면 안 읽어봐도 소장가치가 있을 것이며 매 년 여름마다 꺼내 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 여름이 배경인 콘텐츠들을 간접적으로 여름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정말 좋아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리틀 포레스트 여름 편, 커피프린스 등 여러 여름 콘텐츠의 리스트가 있다. 그런데 본격 '여름'이라는 계절만을 주제로 쓴 글이라면 안 좋아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구매했다. 여름 책을 읽으려면 맥주는 필수라는 생각에 퇴근 후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를 사고,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불 끈 방 안에 스탠드 불빛만 켜고, 이진아가 여름의 고양이 섬에서 고양이 노래를 만드는 영상을 틀고 책을 읽었다. 완벽하게 내가 사랑하는 여름밤이었다.

평소 여름에 대해 내가 느끼던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써둔 글을 읽으니 정말 많이 공감이 됐고, 이 글을 딱 여름의 초입에 읽어서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매 년 이 맘 때 읽기 좋은 책이다. 물론 조금은 호불호 차이가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제주에서 자랐지만 제주의 초당옥수수보단 찐득한 옥수수를 좋아하고 냉면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여름을 대표하는 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옥천냉면은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는 바다, 수영, 맥주와 혼술 등 공감 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특히 한 때 빨간책방을 자주 갔던 나에게, 빨간책방의 바 자리에서 <그 해, 여름 손님>을 읽다가 여름 공기가 너무 좋아한 페이지만 반복해서 읽었다는 내용이 왜인지 마음에 들었다. 그리운 빨간책방의 풍경이 내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하고 나도 여름밤공기가 좋아서 그냥 그대로 걸음을 멈춘 적이 많아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괜히 행복했다.

이 책을 계기로 내가 여름처돌이가 된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선, 나처럼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는 추운 날씨가 괴롭다. 추위에 움츠러드는 것부터 시작해 잘 챙겨 입지 않으면 감기몸살이 나는 것도, 칼바람에 귀가 아픈 것도 괴롭다. 추운 날씨는 사람을 아프게 만들고 계속해서 걱정하게 만든다. 여름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더우면 그냥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시원한 음료를 사 먹으면 대부분 해결된다.(물론 상황에 따라 열사병, 냉방병 등에 걸릴 수 있겠으나 추위 때문에 걸리는 병들에 비교하면 견딜만하다.) 옷차림이 가벼운 것도 좋다. 맨 살에 햇빛이 강하게 와 닿는 느낌도 좋고, 얇은 긴 팔을 입어 살랑거리는 느낌도 좋다. 밝은 색의 옷들이 많은 것도 좋다. 날이 좋으니 많이 걸을 수 있는 것도 좋다. 요즘 출퇴근 때 쓰려고 따릉이 정기권을 끊었는데, 자전거 타는 게 정말 좋아서 친구들이랑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노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귀가한다. 시원해진 여름 밤바람을 맞으면서 한강을 따라 달리며 서울의 야경을 볼 때면,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한국이고 서울이었지만 이 곳에서 사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의 낮도 좋지만 최애 계절 여름 + 최애 시간 밤의 조합인 여름밤은 정말 1년 중 가장 행복한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낮의 열기가 조금 남아 있으면서도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낮의 생생했던 풍경은 사라지지만 그 생기만큼은 남아 같은 야경이라도 조금 더 반짝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에 풀냄새, 꽃냄새 등 온갖 식물의 향기가 합쳐진 여름 냄새와 귀뚜라미 소리, 조용한 거리나 한강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책에 나온 대로,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계절이다. 여름밤 탓이라는 노래도 그래서 나온 거겠지. 책 맨 앞에 등장한 "여름은 적당한 것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끓게 만든다."라는 구절이 여름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서울 야경도 좋고, 낮에는 생기 넘치는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누군가 사진 편집기에서 채도 부분만 높인 것처럼 순식간에 선명한 풍경들이 넘쳐난다. 모든 생물들이 자신의 가장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모습들이 합쳐져 여름의 풍경을 만든다. 이렇게 모두 절정인 것 같은 풍경들을 보면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 진다. 이번 해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와있다는 생각, 더 재밌고 활기찬 것들을 이 참에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햇빛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뭐든 잘 될 것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솟는다.

또 하나의 별미는 여름 음식들이다. 옥수수, 복숭아, 수박, 삼계탕, 매실주스, 냉국, 아이스커피, 시원한 맥주 등 여름에 특히 맛있는 음식들이 정말 많다. 특히 땀 흘린 후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서 먹거나, 햇빛이 쨍쨍한 날 나무의 그늘 아래서, 열대야의 한강에서 등등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함께 먹는 그 순간들이 더해져 더 맛있게 느껴진다. 최근엔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이 악기도 겨울보다는 여름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여름 관련 좋아하는 것 목록에 추가되었다. 여름이 되면 여름의 음악들을 찾아 듣게 되는데, 피아노보다는 기타로 이루어진 곡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악기다. 아직은 잘 못 쳐서 좋은 소리가 나진 않지만 얼른 익혀서 페퍼톤스의 여름날을 쳐보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못 하고 있는 수영 그리고 여름나라 여행이다. 사계절이 모두 여름인 나라를 정말 좋아하고, 그 나라 특유의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특히 스리랑카처럼 여름나라이면서 바다로 둘러 쌓인 섬나라인 경우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다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물에 흠뻑 빠졌다 나왔을 때 춥지 않고 시원한 느낌과 햇빛에 물이 마르면서 뽀송해져 가는 느낌이 좋고, 바다 근처에서 읽는 책은 몇 배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바닷가 모래에 앉아 스무디 볼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파도소리를 듣고 있었던 스리랑카에서의 순간들은 모두 여름이라는 계절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바닷물에 젖어 바다 웨이브가 진 머리에 열대의 꽃을 한 송이 꽂고 수영복을 입어 시원한 느낌으로 모래를 밟으며 바닷가 노을을 보던 기억은 벌써 1년이 지났는데도 잊을 수 없어 내 핸드폰 배경화면 자리를 몇 개월 째 차지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친구와 "여기가 천국일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기억난다. 이런 여름 바다들이 그리워 매 년 여름이 되면 집 근처 수영장에 가서 자유수영을 하곤 했다. 매일 9시부터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여름밤 수영복 가방을 딸랑 들고 터덜터덜 공원을 돌아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발걸음과 여름밤 냄새 , 수영장 락스 냄새, 물속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른 차원 같은 느낌들이 좋았다.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여름의 순간들이 많지만, 그래도 여름이라는 계절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여름 처돌이의 마음이다.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여름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것도 올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또한, 나에게 이번 여름은 과제도 시험도 취업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몸으로 맞는 첫여름이기 때문에 자격증 공부나 하면서 보내는 여름이 아닌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만 꽉 채울 수 있는 여름이 될 것 같아 더 기대가 된다. 힘든 요즘 모두가 올여름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여름이 얼마나 힘센 계절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여름을 향한 애정도 다시금 샘솟았다. 여름은 늘 그런 식이다. 부푼 가슴으로 기다리면서도 정작 다가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맛만 다시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예상보다 많은 추억이 쌓여 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있어 겨울은 '모든 의욕 제로'의 계절이다."

"좋아하는 계절을 닮은 사람과 좋아하는 계절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동안 혼자로도 충분했던 여름의 순간들이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색깔을 덧입는 느낌이었다."

"두 눈으로는 열심히 책 속 문장을 좇으면서도 여름의 설렘을 흠뻑 머금은 바깥공기에 가슴이 울렁거려서 같은 페이지만 반복해 읽었다. 따지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던 그 순간은 몇 년이 지나도 머릿속에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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