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 되기에 충분한 초록의 맛

여름의 맛(2) 오이

by 위다혜

오이는 딱히 좋아하는 채소가 아니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사서 챙겨 먹는 채소는 아닌,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채소였다. 특정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식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유의 시원하고 상쾌한 향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요리에 들어가면 양념의 향에 묻히곤 했다. 오이는 왠지 '조연'의 느낌이 강했다. 콩국수의 데코레이션으로, 골뱅이 무침의 속 재료로, 누군가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재료로만 오이를 접했다.


올여름, 왜인지 오이를 주재료로 하는 요리들이 자주 눈에 띄어 해먹어보고 싶어졌다. 주로 조연 자리에 있던 채소여서 그런지 오이가 메인으로 올라오면 흔한 요리인데도 독특하게 새로운 요리인듯한 인상을 주곤 했다. 초록과 투명에 가까운 하얀빛이 감도는 색이 왠지 멋스러운 느낌을 낸다.

특히 오이 샌드위치는 만들기 간편하면서도 새로운 조합의 맛을 내었기에, 먹어보고 가장 놀랐던 요리였다. 빵은 노릇하게 구워져 따뜻한 느낌을 주고, 소금에 절여져 짭조름한 맛을 내는 오이는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준다. 서로 매우 다르게 보이는 두 재료가 크림치즈 혹은 그릭 요거트를 사이에 두고 만났을 때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빵과 오이 위에 햄이나 계란, 루꼴라가 없어도, 그 둘만의 조화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여름의 맛을 선사한다. 우린 생각보다 많은 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이 샌드위치에 빠진 후 만들어본 것은 오이 칵테일이다. 둥글고 투명한 유리컵에 오이를 길게 잘라 둘러 붙인다. 컵에 오이를 붙여 맛과 향도 주는 동시에 비주얼도 챙길 수 있다니 역시 레시피의 발명은 무궁무진하다. 오이를 붙인 후 원하는 알코올, 솔의 눈, 그리고 얼음을 넣으면 끝이다. 솔의 눈은 평소에 거의 마실 일이 없는 음료여서 늘 궁금했는데, 달콤 씁쓸하면서도 톡 쏘고 청량한 맛을 내기에 왠지 어른의 사이다라는 느낌도 들었다. 초록 느낌을 지닌 음료답게, 시원한 오이의 향과도 잘 어울려 한여름밤 무더위에 어울린다.


등산 중 생으로 아삭아삭 씹어 먹을 때, 콩국수에 조금 올려 먹을 때, 샌드위치의 메인 재료로 올려 먹을 때 모두 다른 맛을 보여주는 오이 요리를 도전해 보며, 다른 익숙하지 않은 재료에 대한 도전도 꿈꿔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