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을 위해 남겨둔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by 위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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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시집을 산 건 몇 달 전이었다. 출간되자마자 꽤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난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술도 사랑하는 사람이라 이 제목을 보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만 좋고 시는 별로인 시집들도 더러 있어 의심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시집을 펼쳐 시를 몇 개 읽었다. 표제작을 읽었는데 정말 신선한 시라는 느낌이 들었고, 어디선가 제주의 바다와 수국 내음이 나는 것 같은 이미지의 싱그러운 시집이었다. 게다가 시집 뒤의 평론을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나에게 믿고 보는 신형철 평론가의 평론이 있다는 것은 그냥 사라는 계시와도 같았다.


그러나 막상 구입하고 나서는 표제작과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꽂아뒀다. 이 시집에서 강렬한 짝사랑의 기운이 풍겨져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내 독서생활 중 시집을 자주 읽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크게 짝사랑에 빠졌을 때와 꿈과 조금 멀어져서 방황하며 절망할 때로 나뉜다. 주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앞으로의 상황도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서 힘들 때 시를 자주 읽었다. 불명확함으로 힘든 시기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조언보다는 애매하고 명확하지 않고 잘 모르겠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글들이 더 다가온다. 대놓고 직설적으로 감정을 묘사하는 글들보다는 시 안에 있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단어, 문장들이 내 상황을 더 잘 알아준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 힘든 시기가 지난 뒤에 그 시집을 펼쳐보면 도대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문장, 단어에 공감한 것인지 기억이 안 날 때도 많다. 그게 시집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짝사랑을 하고 있지 않았던, 사랑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던 그 시기에 이 시집을 읽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은 읽어도 마음에 꽂히는 문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지 굉장히 오래되어 그 감각조차 잊었지만 언젠가 그럴 때를 대비해서 이 시집을 아껴두었고 지금은 내 마음에 완전히 박혀버린 시집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끌리게 되는 마음, 왜 나를 봐주지 않냐고 투정 부리고 싶어 하면서도 눈치 보는 마음, 사실은 안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 체념하는 마음까지 많은 마음들을 담고 있는 시들이 좋았다. 사실은 시도 좋았지만, 평론이 더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특히 아래 인용해둔 부분이 정말 정말 좋아서, 평론가님 천재인 건 알았지만 정말 더 천재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진다. 잘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게 사람 마음이지만..! 짝사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사랑을 인식하지 않고 그 사람을 그냥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어쩌면 가장 핵심을 짚은 문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에게는 짝사랑 포기의 맥락으로 읽히기도 했고 그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에겐 더 와닿았다.


아무튼, 지금 같은 여름과 비와 바다의 계절에 짝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읽기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상처 입은 마음이 자연을 향하는 것은 마음이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눈비가 내리듯이, 내 마음도 그와 같으니 인과적 필연성의 산물임을 실감하고 수락하기 위해서다. 아마도 그게 위로가 되는 때가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자연은 마음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은 자연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자연을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고전적인 서정적 투사의 다른 사례에 불과한 것이지만, 마음을 자연으로 보겠다는 것은 마음을(그것을 지배하는 인과적 법칙성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자연임을 실감할 때, 마음은 자연에서 자유로 바뀐다. 어떤 것의 필연성을 인식할 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인간이 행복해지기 어려운 딱 그만큼 어렵다. 자연에서 자유로 가는 길, 그 어디쯤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시도 있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이것은 무슨 유혹의 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는 말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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