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어둡고 시원한 동굴 속으로
최근 '댄싱사이더'라는 이름의 애플 사이더 술을 처음으로 마셔봤다. 우리나라에서 애플 사이더는 즐겨 마시는 종류의 술이 아니기에, 당연히 해외의 어느 브랜드인 줄 알았는데 국내 브랜드라는 사실에 놀랐다. 감각적인 디자인, 통통 튀는 일러스트의 라벨이 매우 귀엽고 세련되었다고 느껴졌다. 기존에 마셔봤던 애플 사이더는 매우 달달한 맛의 음료수에 가까운 맛이었는데 댄싱사이더는 많이 달지 않은 당도에,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어 화이트와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댄싱사이더는 충주의 사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충주의 어느 동굴 속 기프트샵에서 뜬금없이 알게 되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의 유래를 알게 된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었다. 9월까지는 여름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는 나는 이 여름의 끝을 잡고 사과의 도시 충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충주에 간 목적은 두 개, 활옥동굴에서의 동굴 탐험과 서유숙 스테이에서의 촌캉스였다.
활옥동굴은 충주시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동굴이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국내 유일 활석 광산이다. 동굴이라는 장소에 들어가 본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라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동굴은 늘 11~15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은신처가 되어준다. 왜 옛날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온도의 여름에서 꽤나 쌀쌀한 겨울의 느낌으로 바뀌었다. 한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방문하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동굴 내부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장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대체로 공공기관에서 만든 느낌이 물씬 나는 중구난방의 조형물, 조명, 정보 알림판 등이 대부분이었다. 마케터로서 왜 이런 공간들이 기획된 것인지 고찰하며 동굴을 돌아다녔다. 동굴 속에서 와사비를 키우는 곳, 역사적인 사실을 배울 수 있는 곳, 게임방, 좌욕실 등 알 수 없는 조합의 공간들이 쭉 이어져서 그 비일관성이 웃기기도 했다. 그 중 이곳에 온 목적인 카약 타기, 그리고 우연히 발견했지만 새로운 체험이었던 동굴 속 와인 마시기가 이 동굴의 하이라이트였다.
동굴 내에는 암반수가 고여 만들어진 호수가 있다. 뽀얀 색을 띠고 있는 물 위에서 카약 타기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왠지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카약을 타고 있으니 진정한 동굴 탐험자가 된 느낌이었다. 사실은 그다지 깊지 않은, 성인의 허벅지 정도 오는 깊이의 호수였던 것으로 밝혀져 모두의 실망을 샀지만 그래도 특별한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카약을 탄 뒤 남은 공간들을 둘러보는데, 동굴 속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있어 들어가 봤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진 곳이었다.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촛농, 호그스미스에서 볼 법한 큰 맥주통, 벽에 겹겹이 쌓인 와인병,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아래에 있으니 비밀의 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곳은 입장료가 5,000원인데 가격 안에 와인 한 잔이 포함되어 있어 그냥 와인 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동굴의 물기로 젖어 제대로 앉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스탠딩으로 동굴의 습기를 느끼며 마시는 와인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상적으로 즐기던 무언가를 접하는 장소만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바꿔도 새로운 느낌을 낼 수 있다. 굳이 이 동굴을 위해서 충주를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충주를 지나가게 된다면 한 번 쯤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