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의 드라마 <하트스토퍼>, <귀에 맞으신다면>
여름은 사랑의 계절. 강렬한 햇빛의 바닷가나, 적당히 데워진 공기가 남아있는 여름밤의 거리를 걷다 보면 그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옆에 있는 누군가와 당장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올여름에 본 드라마 중 여름에 제격인, 세상 모든 사랑의 형태를 다룬 두 편의 드라마를 소개한다.
학교에서 만나 친구가 된 찰리와 닉. 우정인 줄만 알았는데 둘 사이에 그 이상의 감정이 싹튼다. 10대들의 학교생활과 풋풋한 사랑을 다룬 성장 드라마 시리즈.
최근 시즌2가 공개된 영국 하이틴 드라마 시리즈 <하트스토퍼>. 시즌1도 재밌게 봤지만 시즌2가 훨씬 더 재밌었다. 인물들 사이의 더 깊어지고 성숙해진 관계를 다뤄, 드라마와 함께 시청자들도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시즌1은 찰리와 닉의 사랑이 진전되는 과정을 다뤘다면, 시즌2에는 그 관계가 어떻게 단단해지는지를 다룬다. 시즌2가 더 좋았던 이유는 그 과정에서 닉과 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신뢰와 사랑이 아름다웠고, 닉과 찰리 주변 퀴어 커플들의 이야기부터 무성애까지 사랑에 관해서라면 한 구석도 빠뜨리지 않고 골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세상의 모든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남성과 남성의 사랑, 여성과 여성의 사랑, 트랜스젠더와의 사랑, 강아지에 대한 사랑, 내 꿈에 대한 사랑, 심지어 요란한 연애와 사랑이 없어도 삶은 충분히 흥미롭다고 말하는 무성애자의 이야기까지 다룬다. 세상은 사랑하는 대상의 성별, 권위, 명예 등을 따져가며 그 사랑은 말도 안 된다고 판단한다. 멋대로 누군가의 사랑을 반대하며 다수가 따르는 사랑의 형태를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하트스토퍼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세상의 모든 사랑은 누군가를 치유하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유난히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격려하는 씬,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다정한 씬들이 가득한 드라마였다.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인 드라마 아니냐고 하겠지만, 비현실적일 정도로 따뜻함을 넘어서 뜨거운 온도의 애정을 보여주는 이런 드라마에 기대어 흉흉한 요즘의 시간들을 넘어가는 나같은 사람들도 있다.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냉소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아직 길이 있다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드라마는 언제나 소중하다.
회사원 주인공이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제로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
평소 팟캐스트를 자주 듣고, 맛집 찾기를 즐긴다면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잠들기 전 평소처럼 팟캐스트를 듣다가, 이런 문장과 마주친다.
뭔가 좋아하는 그 감정을 말로써 남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뎌져 버린대요. 한마디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입밖에 오랫동안 꺼내지 않으면 감동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마음이 뭔가가 좋다고 느끼는 감정조차 없애 버린다는 거죠.
이후 주인공은 "제가 좋아하는 걸 쭉 좋아하고자 시작했습니다."라고 외치며, 평소 좋아하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팟캐스트를 시작한다. 다른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한 사건에 휘말리는 게 아닌,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부터 모든 일들이 시작된다는 점이 귀엽고 감동적인 포인트였다. 그 작고 소중한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만한 마음이 아니다.
주인공이 팟캐스트에서 다루는 좋아하는 음식들이 '체인식'이라고 불리는 체인음식점의 음식이라는 점에 놀랐다. 무릇 일본 드라마라면 잘 꾸며진 바닷가 앞의 2층 집에서, 정성 들여 나무 식기에 소박하게 차려낸 일본 가정식 밥상을 생각한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작은 원룸에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코코이찌방야 같은 체인식을 포장해 먹는 주인공의 모습은 누구의 공감이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모습이다.
주인공이 체인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느 동네에나 있어 특별하진 않지만, 언제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 이런 관점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구나 놀랐다. 역시 세상의 행복들은 자신이 보기 나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특별할 것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들은 마치 새로운 땅을 탐험하는 탐험가, 기존의 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가처럼 느껴진다.
여름부터 아침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쓰기 시간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은 이전의 삶보다 심적으로 꽤나 더 여유롭다. 어떤 형태로든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글 쓰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풍요롭다. 굳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보다 일부러라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말을 더 자주 하는 것은 꽤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