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문동 Aug 09. 2024

온Ⅱ

온은 다섯 살 가을에 모음과 자음을 익히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끈기 있게 연습해도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는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도, 금방 휘발해 버리는 기억력도 정윤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저 넌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사실만을 말해 줄 뿐이었다.

 

 며칠 전, 그러니까 봄과의 대립이 있고 난 며칠 뒤, 봄과 온이 크게 싸웠다.

 어떤 물건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언쟁을 하다가 급기야 봄이 온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치고 만 것이다. 정윤은 크게 화를 냈다. 어릴 때도 하지 않던 몸싸움을 이제 와서 하다니.

 무엇보다 아이 둘이 치고받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정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정윤의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부러워하는 점이었다.


  왜 동생을 때리느냐고 물었을 때 봄은 오래되고 익숙한 대답을 내놓았다.

 “엄마가 아는 온은 진짜 온이 아니라니까?”

 “내가 너희 둘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네가 나를 모르는 거지.  난 너희들을 모르지 않아.”


 “엄만 한 번도 못 봤잖아. 온이 나를 향해 짓는 표정. 엄마는 절대 볼 수 없는, 엄마에게 뒤통수를 보일 때만 가능한 그 표정! 저 손가락 병신이!”


 온은 돌이 되기 전 손가락에 철심을 받고 허벅지의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새끼손가락이 남들보다 짧고 피부의 색도 미세하게 달랐다.  


 정윤은 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 주먹을 한번 꽉 쥐고 다시 내려놓았다. 봄의 기억력은 매우 좋은 편이라 일곱 살에 엉덩이 한 대 맞은 일을 두고두고 언급했다. 봄의 기억은 잊히고 싶은 권리를 모두 앗아갔다. 정윤은 그런 봄의 기억들이 피곤했다.


 “봄아, 다정도 능력이 되는 시대인데, 넌 참 무능력하구나.”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중 정윤이 낚아채서 입 밖으로 겨우 뱉은 말이었다.

 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봄이 마지막으로 우는 모습을 본 것도 오래전이었다.


 “넌 네가 참 잘났는 줄 아는데, 그래서 타인들을 공격하고 비난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줄 아나 본데, 큰 착각이야. 넌 무능력한 이기주의자일 뿐이야.”


 봄은 결국 입술을 깨물며 방 밖으로 나가버렸고 온은 살며시 정윤을 안아주었다. 정윤이 화를 내면 온은 언제나 먼저 다가와 정윤을 안았다. 그런 모습도 봄에겐 혐오스러운 장면일 뿐이겠지만 정윤은 다가오는 온을 내치지 못했다.

이전 0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