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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문동 Aug 10. 2024

정윤Ⅱ

 스물일곱, 정윤은 봄을 낳았다. 스물일곱이 끝나가는 겨울이었다. 봄에 태어난 정윤은 봄을 좋아했다. 사계절 중에 가장 긴 겨울이 힘들었다. 어른이 되면 겨울이 없는 나라로 이민을 가리라 다짐해 왔다.


 마취에서 깨어난 정윤은 한기를 느꼈다. 몸을 오들오들 떨며 복부에 이물감을 느끼며 왜 자신의 배가 봉합되어 있는지 진우에게 물었다.


 “아기 낳았어, 정윤 씨. 기억 안 나? 진통 중에 상황이 안 좋아서 긴급으로 수술에 들어갔어. 거기까지는 기억나?”


 진우는 놀라며 답했다.


 “아…….”


 그제야 정윤은 자신이 임신 중이었고 양수가 터져 급하게 내원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 순간, 그러니까 그의 무의식에 아직 아이가 없던 순간을 정윤은 두고두고 기억하게 된다. 아이가 없이 살아온 이십 칠 년의 인생이 얼마나 유한했던가, 얼마나 유일했던가를 정윤이 그의 의식과 무의식에 견고하게 새겨 넣은 순간이었다.


 진우는 성심껏 정윤을 간호했지만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정윤의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아이가 나온 지 한 달쯤 지나자 정윤은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인 듯했다. 아이는 새하얗게 덮인 태지와 솜털들을 거두어내고 뽀얗고 오동통하게 자랐다.


 정윤과 진우는 번갈아가며 젖병을 소독하고 분유 탈 물을 식히며 왜 육아가 노동이라는 것을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며 웃었다.

 딱히 즐기는 것이 없는 정윤은 유독 커피에 집착했는데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끼기 힘들었다. 봄이 뱃속에 있을 때도 하루에 한 잔은 꼭 마셨지만 수유를 하며 커피를 마시니 아이가 잠을 못 자는 것이 카페인 탓이라고 여겨져 죄책감을 느끼던 정윤은 한 달 만에 단유를 결정했다. 진우의 어머니가 매우 아쉬워했지만 아이가 잠을 못 자는 것보다 나은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모유를 끊은 후에도 봄은 자지 않았다. 백일의 기적도, 돌의 기적도 봄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봄은 십 대가 되어서도 잠드는 것을 싫어해 겨우 잠들고 겨우 일어났다.   정윤은 출산 전 미리 자 둔 잠으로 겨우 버티는 밤을 이어갔다. 다시는 만족할 만큼의 잠을 잘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을 때 온이 태어났다.


 두 번째 마취는 수술실에서 깨어났다. 정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수술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저…….”
 “어머, 산모님 깨신 거예요? 수술은 잘 끝났어요. 어디 불편하세요?”
 “아이는 괜찮나요?”
 “…네…. 마취 깨면 보실 거예요.”
 짧은 침묵에서 정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손가락에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온은 큰 어려움 없이 잘 자라주었다. 제 귀여움을 손에 쥐고 태어난 아이처럼 큰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잤다. 임신 기간 내내 정윤이 했던 고민과 갈등과 후회가 치유받고 있었다.

 머리를 감던 정윤은 빠진 머리카락을 한데 모았다. 젊은 날이 또 한 움큼 빠져버렸다.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된 정윤은 캠퍼스, 도서관, 우정, 로맨스, 여행, 코프스하버 같은 것들이 그리웠다. 단어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떠다니다가 의식이 잠깐 느슨해지는 틈을 타 정윤을 잠식했다.


 대학시절에 정윤은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많지 않았으나 지금의 정윤은 그 시절의 자신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한 치의 오점도 없고 작은 불행도 없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같았던 그때가 자주 그리웠고 질병 같은 그리움은 오랫동안 정윤을 괴롭혔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정윤스스로도 고치기를 원하지 않는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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